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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변호사가 세상을 바꾼다' 공익 로펌 다산

[the L] 사회 곳곳에 법률지식 전파…민주주의 위한 공익활동 전념한 '강소 로펌'


김칠준 다산 대표변호사./ 사진=김창현 기자

법은 사회의 실핏줄이다. 각자 사회를 살아가면서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법에 세세하게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모르면 나도 모르게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궁지에 몰린 뒤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법무법인 다산은 이런 이들을 위해 1994년 경기 수원에서 문을 열었다. 억울하고 소외당한 이들의 송사를 맡는 것을 넘어 사회 곳곳에 법 지식을 불어넣었다. '변호사가 사회를 바꾼다'는 법조운동론을 토대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뿌리내릴 터를 잡아왔다.

"아파트야말로 기초공동체" 아파트시민학교 세워 법률교육

아파트시민학교는 다산에 유명세를 가져다 준 공익사업 중 하나다. 시작은 1990년 초 경기도 시흥의 한 임대아파트에서였다. '날림시공', 하자보수 문제가 들끓어도 제대로 된 해결 절차가 없어 속앓이만 하던 시절이었다. 이 아파트는 유독 문제가 심했다. 스테인리스 철로 돼 있어야 할 아파트 입구 문틀이 알루미늄으로 돼 있었고, 네 쪽으로 나누어져 있어야 할 안방 창문이 두 쪽으로 돼 있었다. 김칠준 다산 대표변호사는 이 아파트를 회상하면서 "나중에 설계도면과 비교해보니 정말 '코미디' 같은 하자였다"고 말했다.

참다못한 임차인들은 변호사를 불러 법적 대응하기로 했고, 김 대표변호사가 밤늦게 단지로 호출됐다. 임차인들은 단지 내 광장에 불을 밝히고 김 대표변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회를 하기 위해 모인 것 같은 광경에서 김 대표변호사는 '아파트공동체'의 가능성을 봤다. 김 대표변호사는 "아파트는 주민 공동의 광장과 공동의 통신수단이 있고, 비슷한 특성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라며 "여기서 민주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는 주민 자치기구가 있다면 아파트야말로 기초 공동체운동을 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했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1993년 수원 소재 한 주공아파트의 분양가전환 분쟁을 대리하면서 구체화됐다. 주민들과 함께 광장에 모여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책을 협의해 나가는 과정에서 '아파트 민주주의'를 연습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변호사는 주민들을 법정에 불러 재판을 방청하게 했다. 소송 결과도 결과지만 법정에서 무슨 법을 갖고 어떻게 싸우는지, 지금 법 제도의 한계는 무엇인지 직접 와서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소송은 패소로 끝났지만 주민들은 김 대표변호사를 다그치지 않았다. 부침개와 막걸리를 차려놓고 "변호사들이 지고 나서 오라고 하면 잘 못 오는데 와줘서 고맙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변호사는 아파트가 '도시 속 마을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아파트시민학교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강의는 아파트 내 자치기구 선출과 관리비 운영, 회계관리 등 실용적인 내용들로 구성됐다. 경기도 여성회관에서 시작했다가 점점 유명세를 타더니 수도권,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수료생들은 "아파트가 이런 공간인 줄 몰랐다"며 호응했고, 이중 몇몇은 지방자치단체 의원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여러 가시적인 성과 속에 학교는 다산을 떠나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확산, 안정화됐다. 현재 학교 교육과정은 지자체나 지역 시민단체들에 흡수돼 민주주의의 뿌리 역할을 해내고 있다.

'IMF 초토화' 지켜보며 중소기업법률학교 설립…인권운동에서도 두각

다산은 중소기업들에도 관심을 가졌다. IMF 경제위기 때 중소기업들이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것을 보며 이들을 위한 법률교육이 절실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깨달음은 1998년 중소기업법률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다산은 계약과 채권의 법적 개념 등 기초내용부터 어음수표 부도 시 대처방안, 민사소송 절차, 강제집행, 노무관리와 M&A 전략·대응법 등 다양한 경영 노하우를 교육했다. 14회 강좌를 진행하면서 매회 60명씩 수료생을 배출했다. 만족도도 높았다. 13회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수료생 모두가 "학습내용이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 95%가 "교육과정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다산은 교육에 그치지 않고 기업이 처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변호사들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도 다산은 로펌 내 중소기업법률센터를 통해 각종 법률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다산은 인권운동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김 대표변호사가 "변호사냐 시민운동가냐"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인권운동에 열심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사무실을 열 때부터 인권상담소를 같이 차렸다. 당시 경기 남부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노동인권단체였다. 임금체불, 해고 문제를 겪는 노동자들과 가정폭력 피해자들, 철거이주민들이 이곳에서 도움을 받았다. 인권영화제, 사회복지학교, 인권평화학교 등을 진행하면서 활발히 활동하다 2000년에 다산 사무실에서 독립했다. 지금도 "인권에는 양보가 없다"는 슬로건과 기업 지원은 절대 받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일선에서 인권을 위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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