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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뻥튀기 3개 훔치고 징역 3년…가난해서 범죄 저지르는 현실 여전"

[피플]'장발장법' 폐지 앞장 선 정혜진 국선변호사가 말하는 그들의 현실…"처벌만이 답 아냐"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사진=안채원 기자

"많은 이들이 이제 우리나라에 배가 고파서 범죄자가 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선변호사에겐 흔히 만나는 피고인이죠. 트럭에서 과자 하나 훔쳐 나오는 그 사람들이 과연 중한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절도를 다시 안할 수 있을까요?"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47·변시 1회)가 '장발장법' 폐지에 앞장서게 된 이유다. 2015년, 그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5조4 제1항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을 내 헌재로부터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았다. 이 조항은 과거에 절도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면 라면 하나만 다시 훔쳐도 징역 3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도록 해 '장발장법'이란 별명이 붙었다.

당시 정 변호사는 노점상에서 600원짜리 뻥튀기 3개를 훔쳐 달아난 김모씨의 사건을 맡고 있었다. 범죄 전력이 있던 김씨는 특가법으로 기소됐다. 변호사가 아닌 인간 정혜진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감성이 아닌 법리로 접근했다. 정 변호사는 "이미 절도를 처벌하는 법 규정이 있음에도, 형량만 높은 또 다른 규정을 만들어 검사가 선택적으로 기소할 수 있게 했다"며 "이는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봤고, 헌재에 위헌 심판을 제청했다.

이런 거침없는 도전엔 그가 버리지 못한 '기자 정신'이 영향을 줬다. 정 변호사는 한 지역 종합일간지(영남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다 변호사가 됐다. 비로소 기사 쓰는 법에 익숙해질 15년 차 중견 기자가 됐을 때, 그는 새로운 길에 나섰다. 

이제 기사를 쓰기보단 전문 자격증을 가지고 현실에 뛰어들고 싶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난 뒤엔 '나도 잘난 게 없는 사람이니, 열악한 상황에 처한 피고인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잘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국선의 길을 택했다.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사진=안채원 기자

국선변호인이 된 후 정 변호사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수없이 만났다.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남성의 사건을 맡았을 때다. 의례적인 절차를 밟으려 구치소를 찾은 정 변호사에게 남성은 쭈뼛쭈뼛 종이 뭉텅이를 건넸다. 사무실로 돌아와 꺼낸 종이 속에는 마약범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알코올중독인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라지자 술을 더 많이 마셨다. 술에 취하면 아이들을 때렸다. 날이 밝고 술에서 깨면 자신 때문에 멍든 아이들을 껴안고 엉엉 울었다. 이 지옥 같은 일이 매일 반복됐다. 아이들은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가도, 막상 경찰들이 출동하면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구치소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일들을 담담히 적었다. 그러면서도 "괜찮다. 견딜 만하다"고 했다. 다만 "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썼다. 

그때부터 정 변호사는 '무조건적인 중한 처벌'이 우리 사회에 과연 도움이 되는가를 고민했다. 정 변호사는 "마약 투약이나 음주운전, 절도 피고인들은 재범률이 매우 높다"면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긴 시간 사회와 분리하는게 과연 재범을 막는 방안인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오히려 가족 전체가 불행해지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정 변호사는 "실제로 가장이 수감되면 그 가정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함께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며 "결국 처벌의 목적은 사회의 안전인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회복적 사법'을 실현하는 게 더 사회에 낫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회복적 사법이란 법원이 형사처벌보단 피고인의 교화를 목적으로 둬 재범을 낮추고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뜻한다.

정 변호사는 어떨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낄까. 그는 국선 변호라는 제도로 누군가에게 힘이 될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우리가 만나는 피고인 중에는 평생 살면서 '변호사'라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도 힘이 됐다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피고인들을 볼 때 코끝이 찡해진다"고 했다. 

그는 '서로에게 너그러운 사회'를 꿈꾼다. 정 변호사는 "자기가 속하지 않은 다른 그룹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개방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특히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정 변호사는 경북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영남일보 기자로 15년 근무한 후 2009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12년 제1회 변호사 시험 합격한 뒤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원으로 2년 근무하고, 2014년부터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인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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