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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장애인 딸과 비장애인 아빠, 상영관서 편하게 영화볼 날 오겠죠?"

[the L]로스쿨 출신 시각장애인 1호 변호사 김재왕씨…멀티플렉스 상대로 '차별구제 소송' 맡아…"장애인, 소비주체로 인정해야"

'영화계 공룡'인 CGV 등 멀티플렉스를 상대로 장애인 차별구제 소송을 맡고 있는 국내 로스쿨 출신 시각장애인 1호 변호사 김재왕씨. / 사진=강민석 인턴기자 msphoto94
지난달 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극장. 영화를 보는 시·청각장애인들 사이로 비장애인인 서울고등법원 판사들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측 법률 대리인들이 보였다. 모두 자막을 띄워주는 특수 안경이나 화면해설을 해주는 헤드폰을 쓴 모습이었다. 지난 2016년 2월 시·청각 장애인 4명이 CGV, 롯데쇼핑, 메가박스 등 '영화계 공룡'인 멀티플렉스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 소송의 현장검증 모습이다. 

이날 원고 측 법률대리인 가운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영화를 보고 싶다'는 의뢰인들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변호인. 바로 국내 로스쿨 출신 시각장애인 1호 변호사 김재왕씨(43·사진)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일하고 있는 김 변호사를 지난 3일 서울 녹번동에 있는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났다. 이번 소송을 제기하게 된 연유를 물었더니 '영화 도가니'를 꺼냈다. 

그는 "도가니가 청각장애인 인권침해를 다룬 영화인데, 아이러니한건 정작 청각장애인들이 그 영화를 볼 수 없었다"고 운을 뗐다.

김 변호사는 "그때 처음으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 이후 장애인영화제 등이 열렸지만 이벤트나 자선행사 성격이었다"며 "지금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몇편의 영화를 선정해서 화면해설과 자막을 만드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를 실시하고 있지만 장소와 횟수 모두 극히 제한적이라 '정당한 서비스'라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방식은 개방형과 폐쇄형으로 나뉜다. 개방형은 대형스크린에 자막이 뜨고, 대형스피커에서 화면해설이 나오는 방식이다. 폐쇄형은 필요한 사람만 개별 단말기나 특수안경을 통해 자막이나 소리를 듣는 방식이다.

영화 차별구제 소송은 지난 2017년 1심에서 시청각 장애인들이 승소했지만 상영업체들이 항소하면서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김 변호사는 2심에서도 승소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차별 구제가 되려면 사실 피고측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원만히 합의하는게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승소한다고 해도 법원이 상영업체 측에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관 지정 및 상영 횟수 등을 명령해 강제해야 하는데, 어느 선이 과연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스크린에 자막을 띄우는 개방형의 경우, 비장애인들이 다수라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따라서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장애인 문제"가 아닌 "일종의 소비자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장애인들을 '선의를 베풀어야 할 대상'이 아닌 하나의 소비자층으로 인정해달라는 취지다. 

김 변호사는 "실제로 미국 멀티플렉스 극장의 대형 체인은 소니와 협업해 특수안경을 제작·도입해 운영하고 있고 호주와 영국 등에서도 상용화됐다"면서 "미국에서는 복합상영관 1관에 장비 4개 이상, 2관에 장비 6개 이상 등으로 매우 구체적인 기준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영업체들은 기본적으로 장애인들을 고객이나 소비자로 안 본다. 시장으로 안 보는 거죠"라며 "이 사람들을 위해 하는 건 고객 서비스가 아닌 무언가 특별한 것으로 본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수익 고려'를 해야 한다는 피고측 주장에 대해서는 "소위 '망했다'는 영화들을 분석해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상영 1회에 관객 1명 정도 본 영화가 전국적으로 총 5400회 상영됐는데, 개방형 배리어프리로 상영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장애인들이 와서 볼 것"이라고 반박했다.

'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아니냐'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절반은 동의하고 절반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영화를 제공하는 상영업자와 니즈가 있는 소비자 사이의 계약문제다. 상영업자는 서비스를 제대로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이행하면 된다는 점에서 국회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배리어프리를 영진위에서만 하고 있는데 앞으로 제작업자와 배급업자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시스템을 갖추는 작업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로스쿨 출신 1호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씨. / 사진=강민석 인턴기자 msphoto94
김 변호사는 서울대 생명과학대학원에 재학중이던 지난 2003년부터 점점 시력을 잃게 됐고, 2004년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찾게 됐다. 이후 4년간 인권위원회 상담원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2009년 로스쿨 1기 학생이 됐다. '방황의 시기는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남들이 그러는데 제가 받아들이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의외로 빨리 받아들인 것 같아요"라고 웃어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새해 목표로 '약자'를 위한 법적 보호라는 임무에 보다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소송을 포함해 결국 중요한 것은 인식의 문제"라며 "장애인 딸과 비장애인 아빠가 함께 영화관에 가서 편하게 영화 볼 날이 언젠간 오겠죠?"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가 소속돼 있는 '희망을 만드는 법'은 장애인, 성소수자,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집회의 자유 등 4가지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이다. 회원들의 정기후원을 통해서 운영되며, 나머지는 강의료 등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현재 변호사 9명 중 2명이 로스쿨 재학시절 이곳에서 인턴을 하고 변호사가 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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