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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5년간 이혼부부 재산내역 들여다보니…'돈'이란?

[the L][조혜정의 가정상담소] 15년간 재산분할과정에 참여해 본 소감 -1회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2016년 1월, 고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부인 노순애 여사의 빈소로 최태원(왼쪽 사진)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따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 사진=뉴시스 (본 자료사진은 아래 칼럼 본문 내용과 무관)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의 돈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월 수입은 얼마고, 재산은 얼마이며, 어떻게 돈을 모았나. 얼마나 쓰고 살까. 궁금하긴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는 상당히 어려운 질문들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혼소송의 재판부와 담당변호사다. 이혼소송에는 재산분할이 동반되기 마련인데, 그러려면 부부의 재산내역과 재산축적과정에 대해 상당히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 

재산분할을 위한 기초자료로 당사자들 명의로 된 재산을 정리한 분할대상재산내역표를 작성하는데, 이 표에 부동산, 예금, 주식은 물론이고 보험해약금, 자동차, 골프회원권까지 당사자들 명의로 된 재산 전체와 채무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이 표를 기준으로 분할비율을 정하는데,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분할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재산을 언제 어떻게 모았는지 알아야 하고 그러자니 신혼부터 현재까지의 재산축적과정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볼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들을 오랜 기간 반복하다보니 대한민국 가정의 재산축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은 듯 하다. 
직접 벌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돈 벌고 쓰는 과정에 대해서 15년간 ‘간접경험’을 했으니 그 정도면 이제는 그 ‘감’을 근거로 얘기해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필자의 일천한 경험과 협소한 시각에 많이 영향을 받았으리란 점은 미리 밝힌다. 여러 가능한 시각 중 하나일 뿐이며, ‘연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감’에 불과하다는 점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1. 단단한 땅에 물 괸다-쓰는 사람은 남는 게 없었다




오랜 기간 재산분할에 관여하면서 돈에 대해 배운 게 많은데 그 중 1순위가 ‘단단한 땅에 물 괸다’이다. 돈은 흐르는 물 같은 속성이 있어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줄줄 흘러나가는 요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요물을 안 흘리고 모아서 부자가 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돈이 담기는 그릇이니 사람 자체가 물 샐 틈이 없이 단단해야 돈을 가둬둘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도 물론 그런 사람이 못 된다. 돈을 벌고 지킨 부자들을 보니 그렇더라는 말이다.

돈이 틈만 있으면 새나가는 요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필자는 다른 사람의 옷차림과 소지품, 타는 차를 보고 그 사람의 재력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병아리 변호사 시절엔 잘 몰라서 옷 잘 입고 좋은 차 타는 사람이 부자려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계속 재산내역을 들여다보니 한 사람의 차림새와 재산의 정도가 비례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외관은 그 사람의 재산에 비례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의 소비성향과 비례한다고 봐야 더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명품 옷과 소지품을 장착하고 수입차를 타서 부자인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재산이랄 것이 없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옷, 시계, 자동차 등 소비재를 명품으로 쓰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개 둘 중 하나였다. 명품을 써도 될 정도로 아주 부자이거나 거의 재산이 없거나. 재산이 없는 이유는 자기 수준에 안 맞는 소비를 하느라 소득을 다 쓰고 모자라면 빌려서라도 쓰기 때문인데, 요즘 젊은 세대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순 재산이 2억원 정도인 부부가 각자 차를 갖고 다니는데 심지어 한 사람은 리스로 수입차를 타면서 생활비가 모자라 계속 마이너스 통장을 쓴다. 월급 300만원의 회사원이 대출원리금으로 월 150만원을 내면서도 ‘너무 갖고 싶다’는 이유로 5천만원 대의 수입차를 할부로 사고 돈 없다고 생활비는 안 준다. 재산은 전무하고 급여는 250만원 정도인 강사가 ‘새벽에 출근하려면 차가 필요하니까’ 자동차를 할부로 산다. 연봉 5천만원 정도의 일반 회사원이 결혼예물로 2천만원짜리 시계를 주는데, 이유는 상대방의 재력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다. 이런 사람들은 결혼생활기간이 길어도 모은 재산이 없고 따라서 나눌 것도 없다.

반면, 정말 허름한 차림에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분이라 딱한 마음에 잘 해드려야겠다고 맘 먹고 있는데 아파트 몇 채에 상가가 몇 개 나와서 나의 얕은 안목을 반성하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나이가 좀 든 세대에게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자수성가한 알부자들의 경우는 대체로 옷차림이 수수해서 외관만으로는 재력을 짐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의 소비성향이 높은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기성세대의 근검절약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해줬는지는 의문이다.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너무 올라 젊은 세대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부자가 되고 싶다면 어쨌든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은 돈을 안 쓰고 모으는 것이다. 단단한 땅에 물이 괴고, 쓰는 사람은 남는 돈이 없다는 것. 돈을 벌려면 어쨌거나 이게 기본이다.






2. 학벌과 돈은 별 상관이 없더라-화이트칼라의 몰락






우리나라의 입시교육은 자녀들을 화이트칼라 직업군에 편입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화이트칼라 직업군이 되면 큰 조직에 들어가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를 갖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많으니 남보다 뛰어나다는 표지를 달아야 하고 그러자니 학벌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화이트 칼라 직업은 대표적으로는 회사원, 교수, 공무원, 각종 연구소의 연구원, 언론인이 있고 자영업도 가능한 전문직(의사,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등)도 있다. 매스컴이 쓰는 용어로는 ‘사회지도층’이다.

화이트칼라 직업군에 성공적으로 편입되면 큰 조직의 일원이 되어 자신이 속한 조직생활의 보호를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변동이 적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건 맞는 듯 하다. 하지만, 화이트 칼라계층이 돈을 많이 버는지는 의문이다. 급여 내지 월소득이 다른 계층에 비해서 나을지는 모르지만 그 급여나 월소득으로 재산을 장만한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국내 유수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의 부장 내지 임원급으로 퇴직한 경우(외벌이 가정을 기준으로) 평균적으로 집 한 채와 퇴직금이 재산으로 남는다. 소비성향이 높은 경우에는 집에 대출금이 남아있고, 대출금을 다 갚았으면 알뜰했다고 보면 된다. 전문직이 개업을 한 경우는 직장인에 비해 재산이 좀 더 많은 경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큰 재산을 모은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화이트칼라 부부 중 평균보다 재산이 많은 경우는 대체로 셋 중 하나였다



첫째, 부모가 재산을 물려준 경우. 부부가 번 돈은 생활비 쓰고 집 한 채 정도 마련하는 정도에 그치는데 그 이상의 재산이 있다면 부모가 물려준 것이었다.

둘째, 맞벌이해서 종잣돈을 모으거나 외벌이라도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부부는 대체로 부동산 투자로 재산을 모은다.

셋째, 우연이든 노력의 결과이든 강남 부동산이 비싸지 않았던 시절 강남에 집을 사서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한 경우 집 한 채만 가져도 수십억 재산가가 된다.

세 경우 모두 학벌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요소들이다.

죽도록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평생 열심히 다닌 결과가 이 정도에 불과하다면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봤다.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누구나 알다시피 자산 가격, 특히 집값이 너무 오른 것이다. 
둘째로는 생활비와 자녀교육비를 너무 많이 쓰는 것이 문제다. 본인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엘리트 코스를 거쳤기 때문에 자녀들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교육비를 아낌없이 쓴다. 
또 조직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비수준을 맞춰야하니 체면유지비가 드는데 차별화된 고급소비의 가격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월급쟁이들이 부담하기는 벅차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억대 연봉이라도 남기는커녕 모자라니 내가 번 돈으로 재산을 모으기는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표준화된 지식으로 얻어낸 학벌과 전문지식을 써서 얻는 급여나 월소득으로 재산을 모으던 시대는 지나간 것 같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 재산만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아이들을 화이트칼라계층에 편입시키려고 굳이 달달 볶아야하는지 의문이다. 국내의 좋은 대학, 외국의 유명대학 등등 화려한 학벌의 소유자들은 많은데 정작 그 학벌로 재산을 모은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공부 잘해야 돈 많이 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런가? 

재산분할 15년 해보니 갈수록 안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조혜정 변호사

[20년간 가사소송 등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지난 20년간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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