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5일 앞두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인이 아닌 검찰 조직 수장이 핵심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 윤 총장은 과거 한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상위권에 랭크된 적 있는만큼 여당에겐 부담스러운 존재다. 이에 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상대편인 야당이 아니라 검찰을 끌어와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MBC, '검언유착' 의혹 보도MBC가 지난달 31일 채널A 이모기자가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에게 여권 인사의 비위를 털어놓으라며 압박했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최근의 상황까지 전개됐다. MBC 보도에 따르면 이 기자는 본인이 서울남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신라젠 사건을 취재 중이라면서 윤 총장 최측근 검사장과의 통화 내용 등을 들려주고 이 전 대표측을 압박했다. 이모 기자는 검찰 고위 간부와의 친밀함을 강조하며 여권 인사에 대한 비리를 알려주면 가족에 대한 수사를 무마해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 직후 채널A는 "해당 기자가 취재원의 선처 약속 보장 등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인 적은 없으나 취재원에 대응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전반적인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며 "취재과정 조사 결과와 회사 내부 규정에 따라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MBC는 검찰에 선처 약속을 요구한 취재원과 채널A 기자가 만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고 해당 취재원으로부터 기자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내용을 제공받아 보도했다"면서 "MBC가 사안의 본류인 신라젠 사건 정관계 연루 의혹과 무관한 취재에 집착한 의도와 배경은 무엇인지 의심스러우며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검찰청은 "MBC 보도에 나오는 현직 검사장은 이모 기자와 보도내용 같은 통화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검찰은 (전반적인 상황과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채널A의 진상조사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채널A는 지난 9일 방송통신위원회 비공개 상임위원회의에서 "소속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해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은 사실이나 사측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으며 해당 기자가 접촉한 검찰 인사가 누군지 특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일 검찰 때리는 여권 인사들…'총장 사퇴설' 주장도MBC 보도 이후 여권 인사들은 일제히 검찰을 공격했다. 검찰과 언론이 유착해 현 정권을 공격하고 있었다는 논리였다.

먼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녹취가 있고 또 상당히 구체적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선 그냥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사실 여부에 대한 보고를 먼저 받아보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는 단계라고 본다면 감찰이라든가 여러 방식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대검에 진상조사를 거쳐 보고서를 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정치권도 움직였다. 친여 성향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은 MBC 보도에 대한 성명서에서 "정치검찰과 종편방송사가 최근까지 벌여온 충격적인 정치공작 음모"라면서 "유신시대, 군사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허위조작사건을 21세기 대한민국 검찰과 언론이 버젓이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 열린민주당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총선을 눈앞에 둔 시점을 노려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건은 지난 권위주의 정부 시절 북풍에 비교될 수 있는 이른바 ‘검풍’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유튜브 방송인 '알릴레오'에 출연해 "총선용 정치 공작을 2~3개 정도 준비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대응 시간을 주지 않고 선거까지 몰고 가려고 정치공작을 준비하는 것 같다"면서 주체가 누구인지는 언급하지 않은 채 "이번 주말에도 터트리려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는 "공작 차원의 준비를 해왔기에 치밀하지 않고 어설프다"며 "정치공작이 본격화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특별대책팀을 만들어 대응할 것"이라면서 "발표되기 전에 손을 대면 긁어부스럼이 되니 공개하면 바로 대응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권의 윤 총장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총장 사퇴설까지 제시했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비례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연차를 낸 윤 총장을 두고 "휴가에서 복귀하는 날 사표를 던지는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든다"고 썼다. 하지만 대검은 "검찰총장 사퇴설은 사실무근"이라며 "골반 염증 치료를 위해 휴가를 냈지만 휴대전화로 업무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고 있다"고 밝혔다.

감찰 둘러싸고 신경전여권의 검찰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검찰 내부에서는 MBC 보도에 등장한 검찰 간부에 대한 감찰 여부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추 장관이 진상조사를 거쳐 감찰에 착수할 것을 시사했지만 대검은 망설이는 분위기다. 감찰에 착수하기엔 겉으로 드러난 범죄혐의점이 미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상황은 한동수 감찰본부장이 윤 총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본부장은 지난 7일 휴가 중이던 윤 총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감찰에 착수하겠다"고 알렸다고 한다. 이전까지 감찰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상태에서 한 본부장이 총장에게 일방적으로 감찰 착수를 통보한 격이다.

문자 메시지를 받은 윤 총장은 대검의 다른 간부를 통해 반대 의사를 전했다. MBC와 채널A가 가지고 있는 녹취록 및 녹음 파일을 확인해 본 뒤 의혹이 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났을 때 감찰 여부를 결정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윤 총장이 대검 인권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하며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윤 총장은 9일 인권부에 MBC 보도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이를 두고 감찰 부서가 있음에도 인권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검찰 고위직에 대한 감찰 업무를 맡기기 위해 최근 감찰3과도 신설했는데 인권부가 진상조사를 맡는 것은 옳지 않다는 외부 지적이 이어졌다.

이같은 지적에 대검은 "총장 지시에 따라 진상 확인 절차를 진행 중인 것은 맞다"면서도 "어느 부서를 통해 진상조사가 이뤄질 지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감찰부가 감찰에 착수했다가 범죄 혐의점이 인지되면 수사로 전환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엔 윤 총장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위치에 놓일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선거 앞두고 동력 잃은 여당의 전략?한편 MBC 보도에서 촉발된 이같은 여권의 검찰 때리기가 일종의 선거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개혁과 적폐청산을 기조로 들어선 현 정권이 계속해서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검찰을 상대로 기세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선거 운동 기간에는 여야가 상대 후보 공약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이뤄지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 과정에서 범여권 공세의 한 줄기가 검찰을 향하고 있다.

범여권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비리를 수사했던 검찰을 새로운 적폐로 정의해 공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권 검찰개혁의 상징적인 인물인 조 전 장관을 내세우면서 그 상대로 윤 총장을 지목했다는 것이다.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는 얼마 전부터 '윤석열VS조국'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범여권이 선거 이후 시작될 검찰 수사에 미리부터 방어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현재 검찰은 라임자산운용 사건이나 우리들병원 대출 의혹 사건 등 현 정권과 민감하게 관련돼 있는 사건들을 수사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이 이번 선거에서 과반석 이상을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것을 우려해 미리 검찰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 부장검사는 "검사는 기본적으로 법률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사안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우선적으로 따진다"면서 "그런 검사들에게 이런 식으로 억지 정치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것은 검찰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