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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조작죄, 엄격한 적용이 필요하다

[the L]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김범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제2부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모뉴엘 대출사기 및 금융권 로비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서울중앙지검은 허위 수출채권을 이용해 10개 금융기관으로부터 총 3조 4000억원 규모의 사기대출을 받고, 그 과정에서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 등에 금품로비를 한 혐의로 모뉴엘 박홍석 대표이사 및 전·현직 임직원 4명을 기소했다.검찰은 또 모뉴엘의 무역금융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 등을 수수한 한국무역보험공사 임직원 6명, 한국수출입은행 간부급 직원 2명, 세무공무원, 대기업 간부 등 10명도 적발했다. 2015.1.25/뉴스1



관세법 제270조의2는 수출입신고 등을 함에 있어 부당하게 재물이나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할 목적으로 물품의 가격을 조작하여 신고한 경우 가격조작죄가 성립되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물품원가와 5천만원 중 높은 금액 이하의 벌금형으로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부당 이득을 취하기 위한 목적의 수출입 물품 가격 조작을 엄단한다는 취지에서 2013년 8월13일 관세법 개정 당시 도입되었다.

수출입 물품의 가격을 조작함으로써 그 조작된 신고가격을 이용하여 재산을 해외로 도피하고 주가를 높이거나 수출입 물품에 대하여 지원되는 정부예산이나 공공기금, 수출채권에 대하여 이루어지는 금융기관 대출금을 편취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의 관세청 보도자료에 의하면, 관세청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건강보험 적용대상으로 등재된 치료재료의 보험수가 및 건강보험 청구 자료와 가격조작 혐의정보를 제공받아, 관세청의 다국적기업에 대한 수입가격 조작 단속 업무에 활용한다고 한다. 국가 재정건전성 확보 등을 위해 유관기관의 협조를 통한 이와 같은 관세청의 가격조작죄 단속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가격조작죄가 성립하는 범위가 불분명하다는 데에 있다. 가격조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의하는 법령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법원 판결과 관세청 실무 사이에서도 그 적용범위를 두고 뚜렷한 입장 차이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수년간 유지해 오던 특정 물품의 수출가격을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물품의 수출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거나 혹은 반대로 종전의 낮은 마진율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수출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인 경우 가격조작죄가 성립할까?

필자의 실무상 경험에 의하면, 세관은 관세법 제270조의2 소정의 가격조작죄가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는 ‘가격을 조작하여 신고한 경우’의 의미에 대해 실지거래가격을 실제 지급·수수 금액과 다르게 허위로 신고한 경우에 한정된다고 보지 않고, 실지거래가격을 인위적으로 고가(또는 저가)로 조정하여 결정하고 신고한 경우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넓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법원은 관세법 제270조의2 소정의 가격조작죄에서 말하는 가격의 ‘조작’신고를 실제 물품 가격보다 높거나 낮은 가격을 허위로 신고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보고, 검사가 피고인이 실제 지급한 거래가격을 있는 그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피

고인의 가격조작 피의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예가 있을 정도로 가격조작죄의 성립 범위에 대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부풀려진 수출실적을 바탕으로 부당대출을 받거나 건강보험 재정을 편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가격조작죄의 적용 범위를 법원판결에 비해 확대하는 관세청의 입장에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가격조작죄는 어디까지나 행위자를 형사처벌하는 형벌 법규(관세 형법)에 해당한다. 때문에 죄형법정주의 관점에서 볼 때 가격조작죄에 대한 해석은 당연히 엄격하여야 한다.

가격조작죄의 핵심 구성요건인 가격의 조작(造作)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실지거래가격을 인위적으로 고가(또는 저가)로 조정하여 결정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이유나 목적이 명백히 부당한 경우가 아니고 신고가격이 실제 지급된 가격과 같다면, 위와 같은 조작(造作)의 사전적 의미와 죄형법정주의에 기초한 엄격 해석의 원칙에 비추어 이를 가격조작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부당대출 방지나 건강보험 재정 유지라는 공익적 목적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헌법상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원칙 안에서 달성되어야 한다. 앞으로 관세청의 가격조작죄 단속이 강화되면 가격조작죄 성립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격조작의 의미를 둘러싼 법원과 관세청의 해석 중 과연 어느 것이 타당한지는 향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특정 분야에서의 공익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기본 원칙이 우선시되는 건강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정재웅 변호사
[법무법인(유) 화우의 정재웅 변호사는 조세 관련 쟁송과 자문이 주요 업무 분야다. 그 동안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 상속증여세, 관세 등 전 세목에 걸쳐 다수의 조세쟁송과 자문사건을 수행했다. 강남세무서, 서대문세무서 등에서 외부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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