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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삼국지로]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죄가 될 수 있다?

[the L][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⑳

편집자주게임과 무협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법률가가 잡다한 얘기로 수다를 떨면서 가끔 진지한 내용도 말하고 싶어 적는 글입니다. 혼자만의 수다라는 옹색함 때문에 약간의 법률얘기를 더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죄가 될 수 있다? (감녕과 능통)




연의에 등장하는 오의 명장에는 감녕과 능통이 있습니다.

감녕이 황조의 휘하에 있던 시절에 능조는 감녕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는데 그 후 감녕과 능조의 아들 능통은 함께 오의 장군으로 활약합니다.

능통이 감녕에게 직접 창검을 겨누지는 않았으나 둘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불구대천) 사이였던지라 둘 사이의 관계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조휴가 악진과 싸우던 능통의 말을 활로 쏘아 능통이 위기에 빠졌을 때 감녕이 화살로써 악진을 낙마시켜 능통을 구하면서 두 사람은 화해를 하게 됩니다.

연의에서도 능통이 울면서 능조의 일을 언급하며 감녕에 관해 얘기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오늘은 부진정부작위범에 관한 내용을 적으려 합니다만 감녕의 직위, 능통의 직위, 둘이 맡은 직위의 상하관계를 정확히 판단할 만한 내용을 찾지 못하여 당시의 단편적 일화에 바탕하여 오군 내에서 감녕이 능통보다 상급자임을 전제하여 글을 적습니다.)

감녕은 오군 진영에 합류한 이후 상당한 전공을 세우면서 손권의 신임을 두텁게 받았는데, 손권이 유수구 전투에서 100명의 인원으로 야습을 성공한 감녕에 관해 ‘조조에게 장료가 있다면 나에게 감녕이 있다’고까지 얘기할 정도였다고 하니 감녕의 활약이 대단하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감녕이 능통을 구하면서 둘이 화해를 하게 되는데 능통이 위기에 빠진 것은 100명으로 야습을 성공한 감녕의 활약에 자극 받아 악진과 싸우러 출진하였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감녕과 화해하기 전) 능통의 입장에서는 비록 감녕이 오군 내에서 자신보다 상급자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야 감녕은 여전히 자신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보니 감녕과 마주칠 때마다 상급자에 대한 예를 표하는 일이 대단히 내키지 않는 일이었을 겁니다(물론 이 당시에 오늘날과 같이 군 내에서의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군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법제가 구체적으로 갖추어 지지는 않았겠습니다만..).

그러면, 오늘날 상관과 마주쳐 경례를 하여야 함에도 부관이 멀뚱 멀뚱 보기만 하고 경례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죄가 될까요? (일반적인 부진정부작위범에 관해 적고자 하는 것이라 군형법이 아닌 형법을 기준으로 적습니다.)

부진정부작위범으로서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표현이 매우 생소하실 텐데 원래 부작위범은 ‘해야 함에도 하지 않아서 성립하는 범죄’로 형법에서 예를 들자면 ‘퇴거불응죄’가 대표적입니다(‘하지 않아서’ 성립하는 범죄, 그래서 결과의 발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행위범’이기도 합니다).

그와 달리 부진정부작위범은 결과의 발생을 전제로 ‘부작위 자체가 작위와 동일한 가치(행위정형의 동가치성)’를 가져야 하고 ‘행위자에게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보증인 지위)’가 있어야만 하는 죄의 형태입니다.

위의 예에서, i) 하급자는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므로 보증인 지위를 갖추었고 ii) 상관을 보고도 경례를 하지 않은 행위는 단순한 부작위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 부작위가 상관을 모욕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행위정형의 동가치성),

경례를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상관에게 경례를 하지 않은 하급자는 상관에 대한 모욕이라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치원에서 호수에 소풍을 갔다가 아이가 물에 빠진 상황에서 ① 그 상황을 본 아이의 아버지가 그냥 구경만 하고 있던 중 아이가 익사한 경우 ② 그 상황을 본 유치원 교사가 그냥 구경만 하고 있던 중 아이가 익사한 경우 ③ 그 상황을 본 지나가던 행인이 그냥 구경만 하고 있던 중 아이가 익사한 경우, 각 행위자는 아이의 죽음에 관해 ‘살인죄’의 책임을 질까요?

①, ②의 경우에는 부진정부작위범으로서 살인죄의 책임을 지지만 ③의 경우에는 살인죄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친권자로 민법상 ‘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보증인 지위) 아이의 생명에 급박한 위험이 발생한 상황에서 뛰어 들어 구조하거나 튜브를 던지는 등의 구조활동 등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스스로 아이를 죽인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어(행위정형의 동가치성)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살인죄의 책임을 져야 하고(①의 경우),

유치원 교사는 유치원과 아이의 부모가 체결한 계약에 따라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보증인 지위)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구조활동을 하지 않아 스스로 아이를 죽인 것과 다르지 않으니(행위정형의 동가치성) 아이에 대한 살인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만(②의 경우),

지나 가던 행인은 법령이나 계약에 의해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없어(보증인 지위의 부존재) 살인죄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③의 경우).

보증인 지위와 관련해 대법원은 법령, 계약 등에 근거한 경우에만 보증인 지위를 인정하면서 조리(그냥 쉽게 상식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내 눈 앞에 아이가 물에 빠져 생명이 위험하다면 튜브를 던지든, 나무막대를 던지든, 어떻게든 구해보려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에 의한 경우에는 보증인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 ③의 경우에는 살인죄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부진정부작위범에 관해 얘기하려다 보니 위와 같은 상황을 의제하여 적었습니다만 그렇다고 내 눈 앞에 앞서 언급한 상황이 벌어 지고 있는데 ‘난 몰라요’해도 괜찮지는 않겠죠? 형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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