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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조에게 간 장합, 원소가 '전직금지가처분' 신청한다면?

[the L][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 ㉑

편집자주게임과 무협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법률가가 잡다한 얘기로 수다를 떨면서 가끔 진지한 내용도 말하고 싶어 적는 글입니다. 혼자만의 수다라는 옹색함 때문에 약간의 법률얘기를 더합니다.




조조군으로 간 장합에게 원소가 전직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건 어떨까요??




장합은 원래 원소 휘하에 있던 장수였지만 조조군에 의해 식량기지를 습격당한 장합이 원소에게 구원군을 요청하였음에도 원소는 곽도의 계책에 따라 장합을 구원하지 않고 조조의 본진을 공격하였습니다.

원소는 대패하였고 이후 식량기지를 지키지 못한 장합도 인정머리 없이 구원군도 보내지 않았던 원소가 오히려 패전의 책임까지 자신에게 물을 것을 예측하고 조조에게 귀순하였습니다.

원소군에서 일하며 원소군의 적지 않은 기밀을 알고 있던 장합이 경쟁관계에 있던 조조군에 귀순하였다는 점만을 부각해 굳이 현재의 관점으로 보자면 ‘회사의 핵심인력이었던 장합이 경쟁사로 직장을 옮긴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소 입장이라면 원소군 내부 사정을 꿰뚫고 있는 장합이 전쟁의 상대방인 조조에게로 갔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합이 조조군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을 것이고 조조 입장이라면 반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합을 합류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직금지가처분에 관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직금지’가처분’은 본안 소송이 아니라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보전처분의 한 종류인데(쉽게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는 건 안 되겠어, 좀 기다려 봐’ 정도의 의미입니다), 통상 이전에 다니던 회사(여기서는 원소군)가 이직한 사람을 피신청인으로 하여(여기서는 장합) 제기됩니다.

보전처분이다 보니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간단히 ‘우리 군사기밀을 아는 장합이 조조군에 가면 우리 군사기밀이 조조군에 누설되어 우리는 전쟁을 지고 말테니 장합이 조조군에 못 가게 해야 합니다’ 정도의 내용입니다)이라는 요건이 필요한데 특히 피보전권리와 관련해,

적지 않은 회사가 근로자로부터 미리 또는 퇴사할 때에 ‘퇴직시 퇴직일로부터 2년 내에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서약서 등을 받아 두고 그것을 근거로 피보전권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서약서(각서)를 써줬으니 서약서대로 해야겠구나’ 또는 ‘이미 서약서를 써줬는데 어떡해~’라고 생각하고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법원은 전직의 자유는 헌법상 직업의 자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 직업활동을 해야만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근로자 개인과 회사가 동등한 지위에 있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근로자가 작성한 서약서나 각서의 유효요건을 엄격하게 봅니다.

판결문의 일부인데 한 번 살펴 볼까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전직금지약정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약정이 헌법상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에 위반해 무효라고 보아야 하며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진 전 지위, 전직 제한의 기간∙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취지이므로,

서약서가 있기만 하면 무조건 다른 회사로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판례가 언급한 위의 요건을 어느 정도는 갖추어야만 서약서의 내용이 유효하게 됩니다.

근로자의 지위(영업비밀과 무관한 경비업무를 담당하던 직원까지 이직하지 못하게 하는 건 과하죠),

새로 취업하려는 회사의 지역∙업종(업종이 달라 경쟁관계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나 거리가 아주 멀어 경쟁관계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까지 이직하지 못하게 하는 것 역시 과하죠),

근로자가 이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회사가 얻는 이익(대부분 영업비밀유지를 주장하는데 회사 내부의 모든 정보가 영업비밀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근로자의 퇴직 경위(근로자가 더 이상 일 할 수 없는 상황을 회사가 만들었음에도 근로자로 하여금 다른 회사에도 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도 과하죠),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여부(회사 이익을 위해 퇴직 후에도 전직금지 의무를 부과하여 근로자의 자유를 제한하였다면 회사 역시 근로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해야겠죠),

제한의 기간(통상 2년 정도로 하는데 더 길어진다면 근로자의 생계가 위협받겠죠, 그래서 근로자에 대한 대가 제공이 필요하기도 하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서약서나 각서에 기재된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합니다.

실제 소송을 해보면 적지 않은 회사가 위와 같은 요건을 잘 갖추고 있지 않은 상태임에도(대부분 전직금지약정의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알지 못하거나 영업비밀과 관련해서도 당해 정보를 영업비밀로 분류∙특정한 후 비밀로서 보호하려는 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서약서 등을 근거로 퇴직한 근로자에게 소송을 걸기도 합니다.

(사실 꼭 이기려 한다기 보다는 이후에 발생할 비슷한 상황에 대비해 ‘경쟁사로 함부로 가면 우리 회사는 소송해~ 조심해~’라는 경고 목적의 소송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쯤 되면 이전의 회사와 이직하는 근로자의 이름으로 소송이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이전의 회사와 이직하는 근로자가 아니라 이전의 회사와 이직하여 입사할 회사가 싸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혹시 전직하는 과정에서 앞서 적은 내용과 유사한 일이 발생하고 서약서나 각서 등을 작성한 일이 있더라도 포기에 앞서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요건을 꼼꼼히 따져 가며 대응방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회사보다는 근로자 개인이 약자이다 보니 근로자의 입장을 중심으로 글을 적어 보기에 따라서는 회사를 나쁘게 그린 것 같기도 합니다만,

실제 사례에서는 대부분의 회사가 앞서 적은 요건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악용해 직원이 고객의 명단, 거래처의 정보 등을 가지고 경쟁사로 옮겨도 회사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앞서 적은 내용 중 전직금지약정이 유효할 수 있는 요건 정도를 확인해 두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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