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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갈량이 준 저고리를 입은 사마의, 그리고 부인과 항변

[the L][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㉛

편집자주게임과 무협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법률가가 잡다한 얘기로 수다를 떨면서 가끔 진지한 내용도 말하고 싶어 적는 글입니다. 혼자만의 수다라는 옹색함 때문에 약간의 법률얘기를 더합니다.




제갈량이 준 저고리를 입은 사마의, 그리고 부인과 항변




제갈량이 5차 정벌에 나섰을 때의 일입니다.

위수에 진을 친 제갈량은 속히 싸우기를 원했으나 촉의 군량 문제나 제갈량의 건강 문제를 간파한 사마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별 수단을 다 써봐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사마의를 도발하기 위해 제갈량은 사마의에게 치마저고리를 선물합니다.

‘싸울 생각은 않고 지키고만 있으니 너는(사마의) 집에 있는 여염집 아낙과 무엇이 다를까, 너 비겁하구나’라는 의미의 도발이었을 겁니다.

이에 사마의는 강가에서(위수) 제갈량이 보낸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는 것을 응수합니다.

‘그래, 니(제갈량) 말처럼 나는 싸움을 피하고만 있으니 니가 보내 준 저고리는 입을게, 근데 나 비겁한 거 아니거든? 출사표씩이나 쓰고도 이미 4번이나 실패한 니가 나의 깊은 뜻을 알긴 해?’라는 의미의 응수였겠지요.

서로 공방을 주고 받은 모습이 민사소송이 진행되는 모습과 꽤나 닮아 있습니다(소송이 아니니 온전히 소송에서의 공방과 같은 수는 없겠지요).

저고리를 선물하는 것으로 표현된 ‘싸움을 피하는 너는 용기가 없어’라는 제갈량의 주장에 저고리를 입은 채 출사표를 읽은 사마의는 ‘그래, 나 싸움 피한다, 그런데 용기가 없어 그런 건 아니거든?’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민사소송으로 보자면 사마의는 제갈량의 주장을 부인하지 않고(‘나 싸움 피하는 거 아니거든?’),

항변하고(‘그래, 나 싸움 피한다, 근데 뭐? 나 비겁하지 않거든?’) 있습니다.

부인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주장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반해 항변은 일단 상대방의 주장 내용을 인정은 하되 결국 상대방의 주장이 맞지 않는 추가적인 사정을 얘기하는 것인데 입증책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소송법적으로는 제갈량의 주장을 사마의가 부인하게 되면 ‘네가 싸움을 피하고 있다’라는 제갈량의 주장을 제갈량이 입증하여야 하는데 입증하지 못 한다면 ‘사마의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라고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이에 반해 제갈량의 ‘네가 싸움을 피하고 있다’라는 주장에 사마의가 ‘그래 나 싸움 피한다’라고 인정했다면, 제갈량과 사마의 사이에서는 ‘사마의가 싸움을 피한다’는 점이 다투지 않는 사실이 되고,

이제는 사마의가 ‘싸움을 피하는 건 맞지만 내가 비겁하지 않은 사정’에 대한 입증을 하여야 하는데 사마의가 입증하지 못 하면 ‘싸움을 피했으니 사마의는 비겁해’라고 결론이 내려질 것이고 입증하게 되면 ‘싸움을 피할만한 사정이 있으니 사마의는 비겁하지 않다’라고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요즘 기사에 오르내리는 사건으로 설명을 할까 합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어느 유명인과 관련해 누군가 ‘나 저 사람한테 200만 원 빌려 주고 못 받았어요’라고 얘기하자 그 유명인은 ‘200만 원 갚았어요’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소송으로 보자면 돈을 빌려 주고 못 받았다는 사람은 원고가 되어 유명인을 상대로 빌려 준 돈 200만 원을 청구해야 하는데,

‘돈을 빌려 주기로 약속한 사실’과 ‘빌려 주기로 한 200만 원을 유명인에게 지급한 사실’이 요건 사실이 되고 돈을 빌려 준 사람이 위 두 가지 사실을 입증하게 되면,

일견하기에는 피고가 된 유명인이 200만 원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피고가 된 유명인은 ‘빌렸지만 갚았어’라고 얘기하고 있으니(‘변제항변’이라고 합니다) 돈을 빌려 준 사람으로서는 굳이 ‘빌려주기로 한 약속’과 ‘빌려 주기로 한 돈을 지급한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에 유명인이 ‘나 돈 안 빌렸어’라고 부인했다면 돈을 빌려 준 사람이 위 두 가지 사실을 입증하여야 합니다.)

이제는 오히려 유명인이 ‘빌린 돈을 갚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유명인이 이 사실을 입증하지 못 한다면 소송상으로는 유명인이 빌린 돈을 갚지 않은 것이 되어 최종적으로 유명인은 돈을 빌려 줬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200만 원을 갚아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역시 돈을 빌리기도 하고 빌려 주기도 하면서,

차용증을 작성하거나(돈을 빌려 주기로 약속하였다는 사실의 증거), 빌려 주기로 한 돈을 계좌이체하거나 돈을 빌려 주고 받은 사람으로부터 영수증을 받거나(빌려 줄 돈을 지급하였다는 사실의 증거) 빌린 돈을 갚은 후 영수증을 받는 등(돈을 갚았다는 사실의 증거)의 행위를 당연스레 하고 있습니다.

부인, 항변, 입증책임 등은 소송법에 등장하는 전문적 용어이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여 그런 행위들의 법적 의미를 사례와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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