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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스파이더맨이 변호사에게 준 교훈

[지역 변호사 칼럼]

편집자주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스틸샷.



2002년작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이 영웅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스파이더맨(피터 파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삼촌 벤 파커의 죽음 때문이었다. 피터 파커는 초인적인 힘을 얻고도 강도를 잡지 않고 그냥 보내주는데, 그 강도의 총에 사랑하는 삼촌을 잃고서야 삼촌이 말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이해하게 된다.

변호사는 영웅도 아니고, 큰 힘이 있지는 않지만 누구든 스스로의 선택이 크건 작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할 때 선택의 무게는 한 없이 무겁다는 점을 깨달은 사건이 있다. 10년차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아직까지도 옳은 선택이었는지 고민되는 일이다.

2017년경 전주지방법원 형사항소부에서 국선 사건을 한 달에 2~3개씩 배당받던 때의 일이다. 국선변호인 신청을 하고 해당 업무를 하였던 것은 변호사로서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공익시간 때문이기도 하였고, 건당 약 20만원 남짓 지급되는 보수때문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무언가 책임감으로 국선업무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집을 나간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뒤 거의 고아처럼 살던 20대의 전과가 없었던 청년이 만취해 지나가던 여성을 협박하여 옷을 벗으라고 실랑이를 하다 피해자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은 사건이 있었다. 이와 같은 범죄는 강간하려던 자가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때(강간상해)에 해당하여 형법에 의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의 중한 범죄가 된다. 당시 시행되던 양형위원회 기준에 따르면 강간이 미수에 그치고, 상해가 경미한 점을 고려할지라도 권고되는 형량은 2년6월에서 5년의 징역형이었다. 1심은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1심이 징역 3년형을 선고했고, 3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할 경우 집행유예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합의만 되면 집행유예는 가능한 사건이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2심 국선변호인으로 사건을 배당받았다. 구속된 피고인은 본인은 가족이 없어 합의가 어렵지만 나가서 갚을 테니 피해자에게 합의를 해달라며 대신 부탁해달라고 했다. 당시 상해 없는 대개의 강간사건의 합의금이 3000만원 정도였고, 강간상해는 약 5000만 원 정도의 합의금이 지급되던 시기였다. 피해자가 나중에 분할해서 갚겠다는 조건으로 합의를 해주는 것을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합의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피해자는 피해가 적고 피고인 가족이 없으니 당장 300만 원만 받고 합의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고인은 당시 하루하루 술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300만원도 없었다. 300만원이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누군가의 20대 3년만큼의 값어치에 비하면 턱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리고 300만 원을 누군가의 20대 3년 인생보다 더 가치 있게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피고인의 합의금을 내주려고 피해자에게 돈을 마련해서 보내겠다고 했다. 피고인이 집행유예로 출소하면 분할해서 갚도록 하고, 여력이 안 되면 로펌 운전기사로 근무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위에 국선 피고인의 합의금을 대신 내줘야겠다고 얘기를 하자 한 지인이 "그 사람이 나와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그때는 당신 책임이 되는 것이냐"는 얘기를 했다. 피고인의 3년 인생을 구해줄 수 있다는 생각만 했고, 구속된 피고인을 사회로 복귀시켰을 때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차례 선고기일을 연기해가면서까지 고민하다, 결국 합의금을 대신 내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명의 꽃다운 인생을 구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다른 파급효과가 생기는 것 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합의금으로 쓰려고 했던 300만 원은, 아마 원래 쓰려고 했던 그 용도보다는 훨씬 가치 없는 일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가끔 그때의 선택이 맞는지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옳은 법조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있다. 지금 10년차 변호사가 되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처럼 선택의 갈림길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변호사가 늘어나고, 이제 변호사는 특별한 직군이 아니며, 스스로는 자영업자라고 주변에 소개를 하고 있다. 다만 큰 힘은 아니지만 변호사의 변론에 따라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항상 마음에 새기며 조심하고 있다. 그 책임감을 회피하지 않고 느끼려 하고 있다.

법조인들이 늘어나지만, 그 책임을 다하는 자들이 늘어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능력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각자의 힘에 책임이 따른다는 점은 인식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민호 법무법인 모악 대표변호사(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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