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민국 법원

이혼 당시보다 경제적 상황이 나아진 전 배우자에게 그동안 지급하지 양육비를 달라거나 금액을 늘려달라며 법적 다툼을 벌여 승소한 사례가 잇따랐다.

19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가사2단독(재판장 정연희)는 A씨가 전 남편을 상대로 제기한 양육비 이행명령신청 사건에서 "피신청인은 신청인에게 미지급 양육비 중 2880만원을 분할해 2024년 2월부터 36개월간 매월 말일에 80만원씩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는 2008년 9월19일 당시 남편과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에는 'A씨를 딸의 친권자와 양육자로 정하고 양육비는 청구하지 않는다. 남편은 A씨의 동의 없이 자녀를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2주 뒤 관할 가정법원 조정기일에 출석해 이혼합의서와 정반대의 조정조서를 작성했다. 내용은 '(자녀가 성년이 되는) 2028년까지 매월 40만원을 양육비로 지급한다. 남편은 사전협의를 거쳐 자녀를 자유롭게 면접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은 조정조서가 아닌 이혼합의서의 내용을 따라갔다. 전 남편은 양육비를 보내지 않았고 아이를 면접하지도 않았다. A씨는 전 남편의 재산과 소득 현황을 잘 알기 때문에 양육비 청구는 포기한 상태였다.

15년 후인 2023년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던 A씨는 전 남편의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보고 깜짝 놀랐다. 전 남편이 서울의 한 고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양육비 이행명령을 신청했다. 전 남편은 "이혼합의서에 양육비를 청구하지 않기로 했고 15년간 지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혼합의서보다 이후 작성된 조정조서의 법적 효력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혼합의서는 조정 성립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서 이후 신청인과 피신청인 사이에 양육비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된 이상 피신청인이 이혼합의서에 기해 양육비지급의무를 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교육비와 물가 상승을 감안해 양육비를 증액한 사례도 있었다. 광주가정법원 가사3부(재판장 심재광)는 B씨의 전 남편 C씨가 제기한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 사건 항고심에서 양육비를 매월 3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늘리도록 한 원심 결정을 유지했다.

B씨는 2008년 전 남편과 협의이혼하면서 양육비로 매월 30만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15년 후인 지난해 B씨는 전 남편이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형편이 나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B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미지급된 양육비 일부를 지급하고 매월 지급되는 양육비를 90만원으로 증액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냈다.

B씨는 고등학생이 된 자녀의 교육비로 영어·수학 학원비, 악기 강습비 등 매월 44만원이 지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5년간 물가가 상승하고 화폐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도 제시했다.

1심 재판부는 B씨와 전 남편의 경제사정, 자녀가 성장하면서 양육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월 양육비를 70만원으로 늘렸다.

재판부는 "사건본인의 나이, 양육 상황, 청구인과 상대방의 나이와 경제사정, 사건본인이 성장함에 따라 사건본인의 양육에 필요한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협의이혼 당시 정해진 양육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사건본인의 복리를 저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보여 부당하기 때문에 이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 남편은 불복해 항고했지만 기각됐다.

두 사건을 각각 대리한 공단 측 구태환 변호사와 나영현 법무관은 "양육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법원의 엄격한 판단을 환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