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비리범죄에 대한 판결을 보는 대중의 시각은 호의적이지 않다. '고무줄 양형'이라거나 '무전유죄 유전무죄'와 같은 냉소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재판에서 이루어지는 '양형(量刑)'이란, 피고인의 유무죄를 일단 가린 후, 그 죄가 인정될 경우 상응하는 형벌의 종류와 정도를 결정하는 것으로 형사소송의 결론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돼 재판을 앞둔 의뢰인들이 가장 먼저 궁금해 하는 것은, "그래서 내가 얼마나 (형을) 받을 것 같냐"는 것이다. 법조문은 몇 년 이하 또는 몇 년 이상의 징역 등으로 그 상한이나 하한만을 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피고인이 조문만을 보고 자신의 형량을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법관에 따른 양형 편차가 심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었기에, 양형의 통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지속됐다.

이에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새로이 도입된 것이 '양형기준표'다. 양형기준표는 일반에도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대법원 양형위원회 홈페이지(http://www.scourt.go.kr/sc/krsc/main/Main.work)에 접속해 범죄 유형에 따른 양형기준을 손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법관의 양형에 고려돼야할 기준들을 제시해, 기존에 광범위하게 허용됐던 법관의 재량권에 제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횡령이나 배임의 경우를 예로 들면, 피고인이 취한 이득액에 따라 유형을 구분하는데, 1억원, 5억원, 50억원, 300억원이 각 구간의 기준이 된다.
 

표=양형위원회 홈페이지

위 표와 같이 각 이득액에 따른 기본 형량을 설정한 후, 감경요소와 가중요소에 따른 각 형량에 대해 따로 구간을 정하고 있다. 그리고 죄는 인정되지만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의 참작사유에 대해서도 기준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횡령 내지 배임죄에서 양형기준표가 형의 감경요소나 집행유예의 이유로 제시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의 횡령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그 이득액 만큼을 되갚아 결국 '상당부분 피해가 회복'됐고, 피고인이 오너 등인 이유로 '피해기업에 대한 소유지분 비율이 높고', '오로지 회사 이익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것 등이다.

다만 법관은 양형기준이 정하는 형량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양형기준에 벗어나는 판결을 하는 경우 판결서에 그 이유를 제시하도록 의무화하여 이를 간접적으로 강제하고 있을 뿐이다.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웅진그룹 회장에 대한 징역 4년의 1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2심은, 피고인이 회장직을 이용해 부실계열사나 실질적 개인회사에 거액을 지원하면서 주주와 채권자 등에게 손해를 입혀 그 범행이 결코 가볍지 않으나, 회생절차를 마치고 재기 중인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보다 기업경영을 통해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집행유예의 이유로 삼기도 하였다.

이와 달리 지난해 겨울, 법원은 아래와 같은 양형이유를 들며 대기업 비리 범죄에 대해 잇따라 엄중한 판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포스코 협력업체인 코스틸 회장에 대해 검찰 구형보다 높은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법원은, 피고인이 횡령액 일부를 변제하였음에도 "지배주주이며 경영자라 하더라도 주식회사인 기업의 자금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저해하며 필연적으로 기업의 부실화를 가져오는 전근대적 기업경영형태로서 경제정의를 심히 왜곡시키는 행위로서 비난가능성이 크다"며,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상황의 재발방지를 위해 피고인을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CJ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은, "재벌총수라 하더라도 법질서를 경시한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며 "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법체계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실형선고의 불가피성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제 1라운드를 끝내고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효성, 동국제강 등 대기업 오너에 대한 실형 선고도 법원 판단의 엄정성을 드러내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각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가 모두 다르고 고유의 특수한 사정을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 등에서 나타나는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1970년대에 ‘로또당첨식의 양형’에 대한 비판으로 1980년대에 양형개혁법을 통해 ‘연방양형기준표’를 마련했다.

이보다 20여년 늦게 도입된 우리나라의 양형기준 운영에는 당연히 해결과제가 남아있을 것이다. 해당 기준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기하고, 그 예측가능성 및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 나아가야 하는 것은 사법부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