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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판례氏] 농약 탄 음료수병에 내연녀 지문…왜 무죄?

[the L] 대법 "피해자의 생전 진술과 피고인 지문에만 의존…증명력 부족"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한 남성이 맹독성 농약을 마시고 숨졌다. 그는 숨이 끊어지기 전 경찰에 "자살이 아니다. 농약인 줄 알면서 일부러 마신 게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농약이 담긴 음료수 플라스틱 병에는 내연녀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내연녀는 살인죄로 기소돼 1,2심에서 유죄가 인정됐지만 대법원에선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간접증거만으로 살인죄 유죄를 인정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판례다.(대법원 2015년 5월14일 선고, 2015도119)

내연녀 A씨는 2013년 11월 어느 날 내연남 B씨와 살던 아파트에서 B씨가 술에 취한 틈을 타 음료수 병에 담겨 있던 농약을 유리컵에 따라 주고 마시게 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부녀였던 A씨는 남편과 결별하고 가정을 버리면서까지 B씨와의 동거를 선택했다. 이들은 교제한 지 2년여가 지난 2013년 10월쯤 크게 다퉜고 B씨가 가출하기에 이르렀다. 

수사당국은 A씨가 이 과정에서 극도의 배신감과 분노 등 살인에 대한 심리적 동기가 있었다고 봤다. A씨가 B씨로부터 받은 아파트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의혹을 키우는 요인이었다. A씨가 아파트 등을 돌려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B씨를 죽인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A씨에게 불리한 정황은 또 있었다. B씨가 들이킨 농약은 음료수 PT병에 담겨 있었는데 이 병에 A씨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A씨는 본인 지문이 발견된 데 대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PT병을) 들어봤다"고 진술했는데 이 PT병은 아파트 경비원이 최초로 발견해 경찰에 건넨 증거품이었다. A씨가 거짓진술을 했을 정황이 있었다는 것이다.

1,2심에서 A씨는 살인혐의의 유죄가 인정돼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A씨가 B씨를 향해 강한 분노를 표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툼이 있던 기간 깊은 정을 담은 메시지를 수차 보낸 사실도 확인되는 등 유죄 근거가 됐던 각종 정황에 배치되는 점들이 다수 발견된 데 따른 것이었다.

이어 농약이 들어있던 음료수 병에 A씨의 지문이 묻어있기는 했지만 정작 해당 농약용기에서는 지문이 발견돼 있지 않았다는 점, B씨가 농약을 들이킬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컵에서는 A씨 B씨 누구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 공소사실을 뒷받침 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대법원은 "유죄심증이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형성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경험·논리의 법칙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간접증거에 의해 형성돼도 무방하다"면서도 "A씨의 유죄를 인정할 직접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존재한다더라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원심은 자살이 아니라는 피해자의 진술과 농약이 담긴 PT병에 묻은 피고인의 지문 등에만 의존한 나머지 피고인이 피해자 몰래 유리잔에 농약을 따라 피해자로 하여금 마시게 하여 살해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심리를 다하지 않고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이유가 모순되는 등의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관련조항
형법 
제250조(살인, 존속살해)
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①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②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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