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왼쪽)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이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8일 임기를 마치며 "헌재가 헌법이 부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재판관 구성 다양화, 더 깊은 대화, 결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께 퇴임하는 이미선 재판관은 "마음 속에 무거운 저울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매 사건마다 균형추를 제대로 맞추는지 고민하고 근심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문 대행과 이 재판관이 이날 오전 11시 헌재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갖고 6년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동료 재판관 7명을 포함해 헌재 전 직원이 참석했다. 두 재판관은 2019년 4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문 대행은 동료 재판관들과 헌재 구성원, 가족과 지인 등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헌재가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하기 위해서 보충해야 할 3가지를 꼽았다. 문 대행은 "집단 사고 함정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쟁점을 검토하기 위해 재판관 구성을 다양화 해야 한다"며 "헌법연구관이나 교수에게 헌법재판관 되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헌재 구성원들 사이의 '더 깊은 대화'를 주문했다. 문 대행은 "대화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과 경청 후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성찰의 과정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근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정쟁,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사이 갈등으로 인해 헌재로 쏟아진 정치적 사안을 암시하는 듯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을 강조했다. 문 대행은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적 해결이 무산돼 교착상태가 생기면, 헌재가 권한쟁의 같은 절차에서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하고 헌법기관이 이를 존중하면서 교착 상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견제와 균형에 바탕한 헌법의 길은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으로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며 "헌재 결정에 대한 학술적 비판은 당연히 허용되지만 대인논증같은 비난은 지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인논증은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고 인격이나 배경을 공격해 논점을 흐리는 것을 말한다.

문 대행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장을 맡으면서 일부 극성 지지자들이 집 앞에 찾아와 비난 시위를 벌이고, 온라인에 과거의 사소한 언행이 모두 공개되는 등의 일을 겪었다. 문 대행은 이런 위협과 "시간을 끈다"는 비판에도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에 시간이 걸렸다고 전날 인하대 법률전문대학원 강연에서 밝혔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퇴임식 후 헌법재판관들과 직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 재판관도 헌재 직원들과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 재판관은 "마음 속 저울의 무게에 짓눌려 힘든 날도 있었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경계했다"며 "여러 영역에서 발생하는 기본권 침해 상황을 저의 한정된 경험을 잣대로 판단하지 않도록 겸손하고자 노력했다"고 재판관 임기 시절 느낀 고뇌를 털어놨다.

문 대행과 함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한 이 재판관도 헌법의 준수를 강조했다. 이 재판관은 "국가기관이 헌법을 준수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이자 자유민주국가가 존립하기 위한 전제"라며 "국가기관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무시하면 우리 사회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이 재판관은 "헌재 구성원으로 국민 기본권 보장과 헌법질서 수호에 기여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헌재가 그동안 해왔던 것 처럼 국민 기본권 보호와 헌법질서 수호와 유지에 전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마은혁 재판관이 지난 9일 취임하며 6개월만에 9인 체제를 완성한 헌재는 이날 두 재판관이 퇴임하면서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된다. 헌재 사건은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로심리할 수 있지만 사안이 중대한 경우 신뢰도의 문제로 심리가 미뤄질 수 있다. 두 재판관의 후임은 오는 6월3일 대선 이후 취임하는 대통령이 지명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행은 1965년 경남 하동 출생으로 진주 대아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18기 출신으로 법관 임용 뒤 주로 부산과 경남에서 쭉 판사 생활을 해왔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으로 엄격한 법치주의자이자 노동법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2007년 자살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 법정에 선 피고인에게 "자살"을 10번 외치게 한 뒤 "우리 귀에는 '살자'로 들린다. 죽어야 할 이유를 살 이유로 고쳐 생각하라"며 책을 선물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 재판관은 1970년 강원 화천 출생으로 부산 학산여고와 부산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26기 출신으로 노동법 분야 연구와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유아 성폭력범 사건에서 피해자 부모와 합의하고 술로 인한 충동적 범행이었더라도 형을 감경할 사유가 안 된다 실형을 선고해 2009년 여성 인권 보장 디딤돌 상을 받기도 했다. 이정미 전 재판관과 마찬가지로 재판관 임명 당시 만49세로 역대 최연소 재판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