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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서초동살롱] 구속 기로에 놓인 전직 대법원장

[the L]


18일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양 전 원장의 수십 가지의 혐의가 적힌 구속영장청구서는 무려 260페이지에 이릅니다. 그는 1997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제도가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그 대상이 돼 후배 판사들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소명하게 됐습니다. 모든 게 헌정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우선 양 전 대법원장은 박병대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공모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해 놓고서 이듬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이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자, 법원행정처가 원고 몰래 재판에 개입해 판결 선고를 연기하고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입니다.

이미 검찰은 양 전 원장이 피고인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관계자를 따로 불러 여러 차례 독대하고,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시하는 등 직접 개입한 정황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양 전 원장은 이 외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공작 사건 △옛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에서도 임 전 차장 등과 공모해 정부 입맛에 맞춰 판결 결과를 조작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영장에 적시된 여러 가지 혐의 중에서도 핵심은 위의 직권남용 혐의입니다. 진행중인 재판에 양 전 원장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 한쪽 편을 들어 절차와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앞서 양 전 원장의 공범으로 의심받는 임 전 차장을 기소하면서 이 혐의를 공소장의 가장 앞쪽에 적시했습니다.

다만 법조계에선 이와 관련해 양 전 원장의 유무죄 여부를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우선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그런데 여기선 '직권의 남용'이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 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남용할 '직권'이 있을 것이 전제입니다.

이는 양 전 원장 측이 무죄를 주장하는 핵심 근거입니다. 양 전 원장의 경우 대법원이나 일선 재판에 이래라저래라 지시할 수 있는 직권이 없다는 겁니다.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이고, 단순히 직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는 있겠으나 처벌 대상은 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앞서 임 전 차장도 "문제가 된 행위는 본인의 직무권한에 속하지 않았다"며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똑같이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공관병에게 각종 허드렛일을 시켰지만 군 검찰은 "병사를 사적(私的)으로 운용한 행위는 법적 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직권남용 혐의로는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검찰은 법원이 직권남용죄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을 대단히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부분이 생겨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양 전 원장측 주장대로라면 실제로 직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는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합니다. 직권남용죄를 만든 취지가 아무리 부적절한 행위라도 처벌하지 못하는 '구멍'을 남겨두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고, 나아가 일선 법관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법원의 수장이라면 기본적으로 광범위한 권한이 주어진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한 검사는 "재판은 개입이 불가능하니까 개입해도 죄가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계시던데, 개입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개입했으니 죄가 무거운 것 아니냐"며 "개입이 불가능하니, 개입해도 죄가 안된다는게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이제 서초동의 관심은 양 전 원장의 구속 여부에 모여지고 있습니다. 다만 법조계에선 구속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사람은 적습니다. 전직 대법원장인 이상 도주 우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법원은 그간 검찰이 청구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인물 4명 가운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제외한 3명의 영장을 모두 기각하면서 '방탄판사단'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피의사실이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관여 정도나 공모 관계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증거인멸 우려와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나 검찰이 소명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서초동의 분위기는 침울합니다. 법원의 '민낯'을  본 상당수 법조인들이 "부끄럽다"는 의견을 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전관 출신 변호사는 "재판에서 원고 몰래 피고측 변호사와 접촉해 재판 진행을 논의한 사람, 행정처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불이익을 주겠다는 문건에 직접 서명한 사람이 대법원장이었다, 이런 사실을 민초들이 과연 상상할 수조차 있겠느냐"며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여기서 밝혀진 사실관계는 두고두고 법원의 신뢰를 방해하는 말뚝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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