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실제 근무형태나 운행시간의 변경이 없는데도 소정근로시간(근로자들이 실제로 일한 시간)만 단축하는 내용으로 변경한 취업규칙 조항은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소송을 낸 택시운전사들은 변경 전 취업규칙 조항을 적용해 받지 못한 임금을 추가로 지급받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8일 A운수 소속 택시기사 이모씨 등 5명이 회사 등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을 낸 택시 운전사들은 정액사납금제 형태의 임금을 지급받고 있었다. 이는 운송수입금 중 일정액만 사납금으로 회사에 납부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운송수입금인 초과운송수입금을 자신이 가지며 회사로부터 일정한 고정급을 지급받는 방식의 임금 형태를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을 제외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제6조 제5항(특례 조항)이 시행됐다. 사측은 이 특례조항에 따라 고정급만으로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초과운송수입금은 생산고에 따른 임금이라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에 포함시킬 수 없게 돼서다.

그러자 사측은 실제 근무형태나 운행시간의 변경이 없음에도 소정근로시간만을 단축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 조항을 변경했다. 소정근로시간을 월 209시간으로 규정했으나 이를 변경해 실제 근로시간은 그대로인데도 격일제 근로자의 소정근로시간을 월 182시간으로, 이어 같은 해 10월 다시 취업규칙을 고쳐 소정근로시간을 월 115시간으로 더 낮췄다.

그러자 이 회사에서 일하던 택시운전사들은 변경되기 전 취업규칙을 기준으로 소정근로시간인 월 209시간을 기준으로 이 기간 인당 171만~236만원의 최저임금 미달액을 각각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택시운전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역시 이런 택시운전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처럼 변경된 취업규칙은 무효라며 택시운전사들에게 임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는원심 판결을 받아들여 확정했다. 

대법원은 “헌법과 관련 조항의 입법 경과, 취지, 일반택시운송사업의 공공성,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합의 관련 전후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변경된 취업규칙상 소정근로시간 단축 조항은 탈법행위에 해당해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유로 대법원은 “최저임금법 규정은 헌법상 국가의 의무로 규정된 최저임금제를 구체화해 택시운전근로자의 안정된 생활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강행법규”라며 “이런 입법 취지를 회피하기 위해 이루어진 소정근로시간 단축 조항은 탈법행위로서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 조항의 효력을 유효하다고 해석하게 되면 특례 조항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를 계속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근로자들로서는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에서 큰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불안한 지위에 처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러한 대법원 다수 의견에는 변경되기 전 취업규칙에 따라 임금을 계산한 원심 판결은 잘못돼 파기 환송해야 한다는 이기택·조희대 대법관의 반대의견, 김재형 대법관의 반대의견, 이동원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기택·조희대 대법관은 “특례조항과 최저임금법의 다른 조항들은 그 입법 목적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며 “정액사납금제 하에서 택시운전근로자의 초과운송수입금과 고정급은 일정한 상호관계에 있다는 사정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김재형 대법관은 “변경된 취업규칙의 소정근로시간 단축 조항이 무효가 됐으므로 근로관계 당사자가 이 조항이 무효임을 알았더라면 의욕했을(원했을) 소정근로시간을 확정해 이를 기준으로 최저임금 미달액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동원 대법관은 “소정근로시간 단축은 근로관계 당사자들 사이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며 “택시운전사의 총수입이 최저임금법상 임금액에 미달하게 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변경된 취업규칙상 소정근로시간 단축 조항이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사측에게 최저임금법 위반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가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액사납금제 하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의 성격을 가지는 초과운송수입금은 택시운전근로자의 총수입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사전에 확정이 어려운 가변적인 임금이어서 택시운전근로자의 총수입액이 불안정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정액사납금제에서 운송수입금이 적은 경우 택시운전근로자가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정도의 임금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는 문제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대법원은 변경된 취업규칙상 소정근로시간 단축 조항을 탈법행위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선언했다”며 “이를 통해 택시운전근로관계에서 적정한 임금 체계가 형성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