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정희,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제38회 영평상 시상식 포토월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영화배우 윤정희씨가 프랑스 파리에 방치돼 있다는 청와대 청원글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남편 백건우씨 측과 윤씨의 남동생들이 윤씨의 상태와 프랑스 법원의 성년 후견 결정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이번 청와대 청원의 직접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지목되고 있는 프랑스 법원의 '성년후견' 제도는 국내에 2013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령이나 장애로 지적 판단력이 불충분한 상태에 놓인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법률생활 및 일상생활 등을 도울 수 있도록 한 게 '성년후견인'제도다.

백씨가 소속사를 통해 내놓은 입장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파리고등법원은 백씨와 딸을 후견인으로 정했다. 백씨 측은 "윤정희씨는 가족과 법원에서 지정한 간병인의 따뜻한 돌봄 아래 생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게시글에서 언급된 제한된 전화와 방문 약속도 법원의 판결로 결정된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청원글은 백씨와 프랑스 법원의 후견 결정을 놓고 다퉜던 윤씨 남동생이 직접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법원 결론 내린 후엔 윤씨 후견문제 국내 법원서 재론가능성 희박"전문가들에 따르면 프랑스 법원에서 이미 윤씨가 남편과 딸의 후견을 받도록 한 이상, 이를 한국 법원에서의 분쟁으로 끌어오는 등의 방법으로 결과를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파리에서 이미 패소한 윤씨의 남동생들이 국내에서 다시 후견심판을 받고자 해도 윤씨가 파리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는, 국내 법원에 성년후견제를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없다. 피후견인이 될 윤씨 본인이 법원에 출석하는 등의 심리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상당한 액수의 윤씨 명의 재산이 국내에 있더라도 처분권은 후견인으로 지정된 백씨와 딸에게 있다. 게다가 어차피 국내 상속법에 따르더라도 윤씨 사망시 유산 상속은 딸(5분의 2)과 남편(5분의 3)인 백씨에게 전부 돌아간다. 윤씨의 형제자매에겐 유산상속권은 전혀 없다. 다만 윤씨가 사망 전 형제자매들에게 '증여'를 하거나, 형제자매들이 성년후견제를 통한 후견인이 된다면 재산 처분권을 가질 수 있다.

성년후견제 정착사업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온율의 배광열 변호사는 "성년후견제와 관련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피후견인의 재산 중 집안에서 물려받은 토지나 주택 등 가산(家産)이 있다고 후견인서 제외된 가족들이 이의제기를 하는 경우"라며 "법원에 의한 성년후견 결정으로 윤씨 재산은 이미 법적으론 안전하게 지켜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는 "윤씨의 경우엔 프랑스 법원에서 제대로 후견인에 의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지에 대해 살펴 보고 있을 것"이라며 "제대로 후견이 되지 않고 있다면 법원에서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배 변호사는 "다만 국내의 경우엔 물리적 한계로 법원에 의한 관리 부분은 소홀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며 "성년후견제는 법원 결정 이후로도 책임있는 기관의 안정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그렇게 되려면 보완 입법을 통해 늘어나는 성년후견 수요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년후견제와 신탁 이용하면 치매노인 재산 안전하게 보호 가능"
성년후견제를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의원으로 활동하며 민법 개정을 통해 직접 도입시킨 박은수 변호사(사단법인 온율)는 제3회 머니투데이 법무대상 수상 인터뷰를 통해 "치매에 걸리는 노년층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후견제도일 수 있다"며 "후견인이 재산을 함부로 처리할 수 없도록 미리 신탁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후견제도가 활성화되면 후견인이 된 자식이 치매에 걸린 부모 돈을 오히려 함부로 처분하지 못한다"며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에 따라 자식이 부모 돈에 손을 대도 처벌받지 않지만, 후견인에 선정된 자식은 달리 취급받는다"고 강조했다.

"가족이 자산가 부모형제 강제 입원시키고 재산 강탈하는 경우 과거엔 흔해"배 변호사는 "과거 성년후견제가 없던 시절, 자산가인 부모를 속이거나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킨 뒤 자식들이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가 흔했다"고 지적했다.

배진석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도 "재산문제가 걸려 있지 않은 후견 문제는 별로 없고 재산이 없는 치매노인에 대해선 성년후견 신청이 아예 없다시피 한다"며 "대부분 조금이라도 유산 문제가 걸려 있는 경우에 후견신청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재벌가 상속문제도 유산다툼이 벌어지기 전, ‘임의후견제도’를 사전에 이용하면 자손들간의 다툼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사후나 치매발병 후에 다툼을 하는 것보다는 후견제도를 생전에 활용하면 혼란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제안이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1명에게 치매가 발병되고 있다.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경도인지장애자 숫자도 매년 증가해 지난해 175만1988명(65세 이상 인구 중 22.7%)에 달했다. 매년 4만~5만명씩 늘고 있는 치매 인구는 지난해 83만명을 넘었고 수년내 100만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최근 성년후견제 신청 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연 7000건 이상이 법원에 접수돼 후견인 지정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