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이동훈 기자

'국정농단' 사태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은폐하려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0)이 법정에서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진행된 첫 공판에 출석해 "국민들의 축복 속에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를 못 채우고 탄핵되도록 보필하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청와대 비서진의 한 사람으로 준엄하게 느낀다"며 이 같이 밝혔다.

우 전 수석은 이날 자신의 변호인이 검찰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밝힌 뒤 "별도로 보완할 내용이 있으면 말하라"는 재판부의 말에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읽어내려갔다. 그는 "저는 대학을 졸업한 뒤 23년간 검사로 근무하고 1년의 변호사 생활을 거쳐 2년6개월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및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했다"며 "학교를 졸업한 후 대부분의 시간을 공직자로 살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항상 사심없이 직무를 수행하자는 것을 대원칙으로 삼았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2년6개월간 거의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주말도 거의 대부분 출근을 했다. 대통령이 언제 어떤 지시를 할지 알 수 없어 사무실 책상, 안방, 서재, 통근차량, 화장실까지 메모지를 두고 지시를 대기하며 긴장된 나날을 보냈다"고 강조했다.

우 전 수석은 "이렇듯 일만 알고 살아온 저의 인생은 잘못된 언론 보도 한 줄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 또한 공직자가 겪어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감내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8개월 가까이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고 있다. 고통의 나날 속에서 지나간 공직생활을 돌이켜 보며 오늘 제가 왜 이자리에 피고인으로 서게 돼 있는지 반추해봤다"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가 모신 대통령이 탄핵되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국민들께서 저에게 왜 이런 사태를 미리 잘 살펴 예방하지 못했느냐는 준엄한 질책을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같이 소회를 밝힌 우 전 수석은 이후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자신의 법리적인 견해를 설명했다. 그는 "저의 공소사실은 모두 제가 민정비서관 또는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업무상 처리한 일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등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가 지난해 7월18일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부동산을 넥슨이 1326억원에 사줬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의 요지는 제가 진경준 검사장에게 부탁해 넥슨이 이를 비싼 값에 사줬다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저는 진경준 검사장을 오늘 이 시간까지 만난 적도 전화한 적도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 보도 이후 모든 언론에서 추측성 의혹 보도를 남발했다"고 지적했다.

우 전 수석은 "특별감찰관, 검찰 등의 수사를 거쳐 박영수 특별검사팀 소환을 받고 영장이 청구된 범죄사실을 보니 국정농단에 관여했다는 부분이 없고, 단지 제가 수행했던 업무를 샅샅이 뒤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으로 적용됐다"고 밝혔다. 특히 "저는 최근 조선일보가 보도한 땅 관련 청탁 혐의, 아들의 의경 보직 특혜 의혹, 가족회사 정강 관련 의혹 등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사건들은 모두 무혐의이고 검찰과 특검을 거치며 국정농단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청와대에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한 데 대해 재판을 받기 위해 피고인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우 전 수석은 또 "제가 청와대에서 공직자로 근무했지만 그 이전에 저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 아래서 공정한 재판을 받고 싶다"고 재판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우 전 수석은 구체적으로 민정수석의 업무와 관련해서 정부조직법상 포괄적 규정만 있고 업무 요건을 정한 어떤 법령도 없어 직무권한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면 해야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사수석이나 교육문화수석이 장관에게 전화해 전보 인사를 한 것이 여러 건 있었다"며 "인사수석 등은 인사와 관련해 기소된 경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마지막으로 "지난 2차례 영장실질심사에서 사법부가 저의 호소를 받아들여 영장이 기각됐다"며 "저 한명에 대한 처벌 여부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에 내포된 헌법적 가치와 국정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잘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재판부에 말했다.

한편 우 전 수석은 이날 1시40분 쯤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도착했다. 짙은 회색 정장에 푸른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그는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법정에서 충분히 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깝다"고 했다.

이후 재판이 진행되는 320호 법정에 도착한 우 전 수석은 책상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앉았다.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여유있는 표정으로 위현석 변호사 등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발언하기 앞서 검찰이 공소사실 요지를 설명하는 모두 절차를 진행할 때는 검찰 쪽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이따금씩 재판부 쪽과 방청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특히 검찰이 우 전 수석의 공정거래위원회 압박 의혹을 설명할 때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