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시민공원에서 반려견이 산책을 하고 있다. 2021.2.14/뉴스1

최근 법원에서 반려견이 지나가는 행인을 직접 물지 않았어도 위협에 놀라 다쳤다면 견주가 치료비와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연이어 나와 논란이다. 직접 상처를 입히는 물림 사고가 아니어도 반려견에 놀라 행인이 다친 경우엔,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단 결론이어서 유사한 사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 김초하 판사는 줄에 묶인 강아지에 놀라 다친 8살 아이의 부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 견주에게 치료비와 위자료 등 56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지난 1월 판결했다.

경남 창원시에 사는 A씨는 2019년 6월, 생후 8년된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던 중 한 아파트 화단 앞 나무에 잠시 묶어 두었다.
그 사이 초등생 B양(8)이 그 옆을 지나던 중 갑자기 개가 달려들자 넘어져 팔꿈치를 다쳐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B양 부모는 정신적으로도 트라우마를 겪어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B양 부모는 A씨에게 치료비와 위자료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대한법률구조공단 도움으로 소송제기를 했다.

A씨는 자신의 반려견이 성대수술을 해 짖지 못하며, 사고현장의 산책로는 폭이 4~5m 정도로 여유가 있어서 지나가던 행인은 강아지를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고 항변했다. 또한 B양의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에 대해서는 그 사건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조정에 회부시켰으나 불성립되어 결국 정식 재판이 이뤄졌다. 재판부는 B양 부모가 청구한 병원 치료비(심리치료 포함) 260여만원과 위자료 300만원을 인정했다.

김 판사는 “피해자는 8세 여아인 반면 개는 성견으로 어른 무릎 정도에 오는 중형견”이라며 “A씨의 개는 그 행동과 이빨 등을 고려할 때 주인 외 다른 사람에게는 큰 위험과 두려움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갑자기 달려드는 개를 발견하면 뒷걸음질 치거나 놀라 주저앉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라며 “설령 B양이 도망 등 방어행위를 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B양의 과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소송을 대리한 법률구조공단의 정성훈 변호사는 “반려견이 물거나 할퀴는 등 직접적 신체손상을 입힌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손해 뿐만 아니라 정신적 손해까지 모두 인정됐다”며 “애견인구가 1천만명을 훨씬 넘긴 요즘 견주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에도 주차 중이던 견주가 자신의 미니어처 슈나우저를 놓친 사이, 60대의 행인이 놀라 뒷걸음질 치다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법원은 당시에도 견주의 주의의무를 물어 행인의 상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견주는 강아지가 작아 어린 아이도 놀라지 않을 크기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행인이 요구한 배상액의 50%를 인정해줬다. 민법 제759조에선 동물 점유자의 책임에 대해 '주의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이런 최근 판결 경향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한 개업 변호사는 "강아지가 달려들어 놀라 넘어져 다쳤다는 사실 자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순 있다" 면서도 "하지만 직접 물리지 않고 지나가던 행인이 남의 반려견에 놀라는 일은 자주 발생하는 상황인데 최근엔 반려견에 물리지도 않고 물렸다며 치료비를 달라는 악의적인 사기범죄도 늘고 있단 점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