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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술 먹고 경찰 손가락 부러뜨린 20대…판사 앞에선 싹 변했다

[수습기자 법정취재기]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피고인 전과는 없는데 이번 사건에서 경찰관 손가락을 부러뜨렸어요. 전과 있었으면 당장 구금 영장 나와요. 쉽게 말해서 구속이에요."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법정. 채희인 판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법정에 울렸다. 채 판사의 호된 꾸짖음이 이어지자 피고인석에 서 있던 20대 남성 A씨는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A씨는 지난달 14일 새벽 4시 서울 서초구 주점에서 소란을 피우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상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A씨는 경찰관을 밀치며 강하게 반항하다가 경찰 1명의 손가락을 잡아 부러뜨렸다.

사건 당일 경찰에게 야수 같았을 A씨는 재판관의 '구속'이라는 말에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한순간에 '순한 양'이 됐다. 판사가 피해자와 합의한 건지 묻자 A씨는 말끝을 흐리며 소심하게 대답했다.

판사는 재판 말미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한 번 더 강조했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앞으로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다"며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A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선고는 다음달 21일 나온다.

형법 제136조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폭행 또는 협박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A씨처럼 공무집행 방해로 검거되는 이들은 전국에서 하루 평균 30명에 이른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경찰이 검거한 공무집행방해 사범은 연평균 1만1252명을 기록했다. 특히 경찰을 대상으로 한 공무집행방해가 많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11월 공무집행방해 사건 중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사건이 83.2%를 차지했다.

경찰청이 공무집행방해사범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하고 지난해부터 현장 채증 강화 지침을 마련하는 등 대응방안을 발표했지만 일선에선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참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서울 남부지역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B경감은 "출동을 나갔다가 한 명은 주먹으로 가슴을 맞았고 또 다른 한 명은 멱살을 잡혀 목에 긴 상처가 났다"며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자살 생각이 든다는 신고를 받고 간 터라 신고자의 상태를 감안해 그냥 넘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구대에 근무하는 C경감은 "공무집행방해로 단속하면 경찰이 직접 경찰서에 가서 피해진술조사도 해야 하고 사건을 처리하는 데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송치를 망설이게 된다"고 전했다.

어렵사리 형사 재판으로 넘겨도 유죄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도 경찰들에게는 부담이다. 법원행정처가 발행한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공무집행방해로 접수된 1심 형사 재판 6742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179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구금, 금고 등 유기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242명에 불과하다. 재판 결과도 이렇다 보니 경찰 입장에서도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경찰끼리 자조적인 말로 '우리 월급에 욕값이 포함돼 있다'고 해요. 송치해도 처벌이 솜방망이기도 하고요." 취재 중 만난 한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강제력을 동원해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 업무의 특성상 민원인과의 충돌 가능성에 항상 노출돼 있다"며 "경찰의 현장 판단을 법원이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황 자료를 확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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