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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교제 폭력을 폭행죄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지난 5월26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교제 폭력을 신고한 피해여성이 흉기로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그날 오전 5시37분쯤 가해자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긴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임의동행 형식으로 가해자를 지구대로 데려가 조사했고 오전6시11분쯤 풀어줬다. 가해자는 흉기를 준비해 1시간이 지난 7시17분쯤 피해자를 살해했다.

사건이 발생한 뒤 국민들은 왜 국가가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했는지 질타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 접근을 금지하는 등의 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선 법에 규정이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 국민이 요청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법을 이번 사건에 적용할 수 없었던 이유를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 접근을 금지하는 명령이 규정된 법률로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있다.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하려면 가해자의 행위가 스토킹 행위여야 하고 스토킹 행위가 스토킹 범죄여야 한다. 스토킹 행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는 행위 등을 통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다. 이런 행위를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으로 했을 때 스토킹 범죄가 된다.

여기에서 스토킹 범죄는 반의사불벌죄다. 당시 경찰 조사과정에서 가해자가 지속적이거나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경찰은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이 적용되려면 가족구성원 사이에서 신체적이나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구성원이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해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을 말한다. 동거관계는 가정폭력처벌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가해자 분리 조치는 어렵다고 해도 피해자 보호조치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경찰의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훈령)에 따라 피해자 보호조치는 일단 가능하다.

이 훈령은 '경찰관서의 장은 피해자가 피의자로부터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해를 당하거나 당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 직권 또는 피해자의 신청에 의해 신변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피해자 보호시설 등 특정시설에서의 보호, 외출·귀가시 동행, 수사기관 출석시 동행 및 신변경호, 임시숙소 제공, 주거지 순찰강화, CCTV(폐쇄회로TV)의 설치 등 주거에 대한 보호, 비상연락망 구축, 그 밖에 신변보호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신변보호 유형으로 규정한다.

다만 이 훈령에 따르더라도 경찰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강력한 보호조치를 취하긴 어렵다. 교제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기본법적 성격을 띈 스토킹처벌법도, 가정폭력처벌법도 피해자의 의사나 동의를 가장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사법시스템에서 교제폭력은 단지 2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폭행죄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하루 빨리 '교제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완벽하게 분리하고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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