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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검사의 '깊은 빡침'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이 지난달 30일 '폭력조직 수노아파 하얏트호텔 난동사건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젊은 조폭들이 술집에서 회동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한 뒤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힘을 줘 다무는 등 분노를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 방송을 탔다. 신 검사가 해당 브리핑을 하는 모습이 갈무리된 한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130만회를 돌파했다. /SBS 뉴스 캡처

"정직하게 사는 게 바보인 시대." 주가조작사범에게 부당이득의 최대 2배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개정한 자본시장법이 여전히 주가조작 범죄를 근절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본지 기획기사(주가조작=패가망신법 '미완성 공식')에 달린 댓글이다. 어느 분야보다 공정과 상식이 지배해야 할 시장의 표리부동에 대한 깊은 자조가 드러난다. 시세를 조종해 수백억원의 불법이익을 거둔 이들이 풀려나고 검은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세태에 대한 한탄이 정직을 바보 같은 짓으로 치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통계를 보면 '그래도'라는 반박을 들이대기가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2016~2021년 시세조종·미공개정보 이용 등 불공정거래 위반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통보한 85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457명(53.5%)이 조사만 받고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주가조작 혐의가 적발돼도 2명 중 1명은 재판조차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재판에 넘어가 징역형이 선고돼도 절반가량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부당이익 몰수 실적은 더 심각하다. 2014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쌍방울 주식 시세를 조종해 347억원의 부당이득을 거둔 혐의로 기소한 쌍방울그룹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은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사실상 벌금 1500만원으로 모든 죗값을 털어냈다. 김 전 회장 입장에서 보면 단돈 1500만원으로 사법리스크를 해소한 셈이다.

막대한 부당이득을 거둔 이들이 손톱만큼의 대가만 치른 뒤 떵떵거리는 현실이 김 전 회장만의 얘기는 아니다. 말 그대로 '감옥 가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제2, 제3의 주가조작 범죄로 봇물을 이룬다. 2019~2022년 금융위에서 불공정거래로 제재받은 643명 중 149명(23.1%)이 과거에 한 번 이상 고발·통보 또는 과징금 이상의 제재를 받은 전력자다.

과징금 2배 부과법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의되고 국회를 통과했지만 국내법 체계에서는 여전히 부당이득이 얼마인지 산정하는 것도, 부당이득을 몰수하는 것도 어렵다. 금융당국이 과징금을 부과하더라도 행정소송이 제기되면 지금의 법과 판례로는 법원이 상당 금액을 깎아줄 수밖에 없다고 법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기징역을 선고해서 부당이득을 살아있는 동안 쓸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차라리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얼마 전 조직폭력배들이 상의를 탈의하고 문신을 드러낸 채 "파이팅"을 외치며 단합대회를 하는 모습을 본 한 강력부 검사가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였다. 영상의 당사자인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은 "누군가 '저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빡침'이라는 댓글 남겼던데 정확한 제 심정"이라고 말했다. 법망을 빠져나가 또다른 범죄를 꿈꾸는 주가조작 사범을 목격한 이들의 심정이 이와 다를까.

검찰은 지난 5월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부를 정식 직제화한 데 이어 이달 말 가상자산합동수사단을 발족할 계획이다. 조직 신설과 인사를 앞두고 검찰 사정에 밝은 이들은 알만한 이름이 오르내린다. 신 부장검사는 "조폭들에게 하나의 경고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느 검사의 '깊은 빡침'이 주가조작 시장범죄 세력에도 경고가 되길. 그리고 더는 쌈짓돈을 털리는 이들이 없도록 새로운 해법을 찾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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