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 참석해 주재하고 있다. 이날 개최된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은 3년 만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대법원은 A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 등 소송 '일명: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소송' 상고심 사건에 대해 공개 변론을 진행했다. 판결 선고는 변론 종결 이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최종 토론(전원 합의기일)을 거쳐 2~4개월 내에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머니s

장애인과 유모차 이용자, 노인 등이 국가를 상대로 각종 편의시설 등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라는 취지에서 낸 소송의 공개변론이 23일 대법원에서 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이날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등이 이들의 시설 접근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취지로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 소송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원고 측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는 "쟁점 규정(장애인등편의법)은 입법목적을 달성 못하고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편의 증진에 대한 국가 종합계획 5년마다 수행되는데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은 2020년 5차 계획에서야 처음 언급됐다"고 밝혔다. "개정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방치한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에 대해 피고 측은 "쟁점 규정은 대통령령으로 편의시설 대상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고 있고, 적어도 법령이나 법률 문헌상 (피고에게) 작위 의무가 인정되기는 어려워 보이며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 권고 이후 시행령 개정 절차를 밟았다는 점에서 (원고 측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며 "피고는 장애인 접근권 확보를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고 했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참석한 배융호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편의시설에 일단 들어가야 종업원을 만날 수 있고, 어떤 물건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데 아예 들어가질 못하니 종업원을 만날 수도 없다. (편의시설에) 들어가는 것만이라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국가가 장애인등편의법 관련 '편의시설 설치 의무 기준'을 지나치게 낮게 잡아 장애인·유모차 이용자·노인 등에게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다. 대법원은 국가가 이러한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게 입법 부작위(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에 해당해 위법한지, 위법이라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하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과거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제정 당시인 1998년에는 편의 제공 의무를 부담하는 소규모 소매점 범위를 '바닥면적 합계 300㎡(약 90평) 이상의 시설'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에 해당하는 편의점은 전체 3%에 불과(2019년 기준)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지체장애인 김모씨 등 4명은 2018년 이 조항과 관련해 "접근권이 침해된다"며 GS리테일·호텔신라·투썸플레이스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편의점이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2심 재판 중인 2022년 해당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바닥 면적 50㎡(약 15평) 이상 점포'의 경우로 편의시설 설치 의무 범위가 확대됐다.

이날 공개변론이 열리기 전인 자정에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원고 측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시행령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도 주장했다. 법무법인 미션 정다혜 변호사는 "법에서는 접근성을 보장하라고 했으나 실제로 이를 이행해야 할 정부는 300㎡이라는 과도한 기준을, 그것도 25년 동안 개정하지 않아 차별을 제도적으로 조장해왔다"며 "오래 참고 기다린 끝에 2018년 소송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결과는 변론 종결 후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토론을 거쳐 향후 2~4개월 이내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원고들의 청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입법 부작위에 따른 국가 배상을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된다.

한편 이번 공개변론은 2021년 6월 이후 3년여만이자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론 처음 이뤄졌다. 그만큼 장애인과 임산부,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편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