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사실관계 인정의 중요성

대체적으로 소송의 승패는 ① 법령이나 계약상의 애매한 조항을 법관이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와 ② 당사자 사이에 서로 다른 사실관계를 주장할 때 법관은 어떠한 사실관계를 채택할 것인지의 문제에 달려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실관계는 하나일 뿐이지만, 많은 소송사건에서는 당사자 사이에 사실관계 중 중요한 대목에 있어서는 그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소송당사자 중 하나 또는 다수가 사실관계의 확정이 소송의 결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판결문은 그 첫머리에서 ‘기초사실’이라는 제목 하에 법관이 인정하는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사자 주장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오늘은 소송당사자가 서로 다른 사실관계를 주장할 때 법관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법관의 사실관계 인정 방법

민사소송의 심리에 관한 기본원칙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변론주의 원칙입니다. 변론주의 원칙에 의하면 일방 당사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는 경우 상대방이 위 사실을 다투지 않으면 증거조사 없이 위 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위 사실이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다투는 경우에는 위 사실을 주장하는 당사자는 그 사실이 진짜임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민사소송에서 증거는 서증일 수도 있고, 동영상자료일 수도 있고, 사람의 진술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증거는 필요한 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도 되고 필요한 사실을 추정하게 하는 간접적인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도 됩니다. 예컨대, 계약서는 계약 사실의 존재 및 내용을 직접적으로 입증하지만, 어떤 사람의 과실을 존재는 직접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사람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과실의 존재를 추정하게 됩니다. 민사소송에서는 위법하게 취득한 증거라도 얼마든지 증거로 제출할 수 있고, 증거의 자격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법관은 증거를 조사한 후 그 신빙성을 자유로이 평가하고 이에 더하여 변론 과정에서 법관이 얻은 인상을 종합하여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데, 이를 ‘자유심증주의’라고 합니다. 결국 사실관계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법관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증거를 조사한 후에도 법관이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에는 법관은 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여야 하는데, 이를 ‘입증책임’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형태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그 입증도 해야 하는 결과로 귀결되는데, 이를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결국 소송당사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의 입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 법관에게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면 그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어 불리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심증주의와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의 경계

따라서 어떤 경우에 법관의 심증이 형성되어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법관의 심증이 형성되지 못하여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에 의하여 그 사실이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지에 관한 기준이 무엇인지가 문제됩니다.

우리 판례는 자유심증주의가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사실의 인정은 적법한 증거조사절차를 거친 증거능력 있는 증거에 의하여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하여야 하고, 사실인정이 사실심의 재량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그 한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법관마다의 가치관과 경험의 획일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이상 법관에 따라 정의와 형평의 이념이 다를 수 있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이 다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민사소송은 법관이 기본적인 상식은 가진 사람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실인정의 결과를 더욱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변론의 전취지’입니다. 법관은 증거조사의 결과에 변론의 전취지(즉, 변론을 통하여 얻은 인상)를 더하여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판례는 증거 없이 변론의 전취지만으로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지만, 민사소송에 있어서 증거에 제한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법관은 형식적인 증거 하나만 제시하면 사실상 변론의 전취지, 즉 자신이 받은 인상에 기대어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초임 변호사이던 무렵 법관 출신의 선배변호사가 적당한 사람의 명의로 준비서면의 내용을 적절히 편집한 진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업무지시한 경우가 있었는데, 현재도 이런 증거제출 방식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민사소송에 있어서는 허위의 증언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지만 막상 위증죄로 처벌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요컨대 민사소송에서 진술증거는 실제에 있어서는 그 신빙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 있어서는 많은 법관들이 사실관계에 관한 심증의 형성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후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에 의하여 사실을 판단하는 대신, 위와 같이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진술증거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한 자유로운 심증의 커튼 뒤에 숨어 자의적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당사자나 소송대리인으로서는 판결이 법관의 자의적인 사실인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으며, 이는 간간히 들려오는 전관비리 소식과 합쳐서 국민들의 법조계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으로 확대 재생산됩니다.

◇"법관의 자의적 사실인정에 대한 불신…사실심 충실화로 해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