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지난 2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00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등의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예산안은 6개월의 대장정을 거쳐 법정시한내 처리됐다./사진=이동훈기자 |
법적요건을 갖추지 않은 예산의 전용(轉用)이나 법적 허용범위를 벗어난 예산집행,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예비비 사용 등의 행위에 대해 형사벌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3일 서울 행당동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한국법정책학회, 한양대 법학연구소 공동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주희 청주대 교수는 재정운용에 있어서 기금보다 그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예산의 불법집행에 대한 벌칙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국가재정 기본법인 '국가재정법'의 실효성이 확보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예산의 불법전용, 예비비 목적외 사용에 형사벌 규정 도입필요성 검토해야"=
이 교수는 △국가재정법 제46조(예산의 전용)에 규정된 예산전용 요건을 갖추지 않은 예산집행 △국가재정법 제47조(예산의 이용·이체)에 규정한 이용(移用)의 법적 허용범위를 벗어난 예산집행 △국가재정법 제22조(예비비)에 규정한 목적 이외의 예비비 사용 등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정형벌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예산전용 요건을 갖추지 않은 부적절한 집행사례로 미래창조과학부 소관의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운영사업'의 2012년 예산 중 4억6300만원이 이 사업과 전혀 유사성이 없는 다른 7개 사업의 인건비나 직무수행 경비 등으로 집행된 일, 국가보훈처가 최근 5년간 2014년을 제외하고매년 예산의 이용·전용으로 보훈병원 진료사업에 사용하는 일 등을 꼽았다.
예산전용을 통해 국회에서 확정한 예산목적과 무관한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로는 해양수산부가 '해양사고 예방활동 지원사업'으로 전용한 금액을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당선활동 지원에 집행한 일이 꼽혔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아리랑 핵심 컨텐츠 개발 및 세계화' 사업의 경우 전시성 사업에 대한 예산이 국회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감액됐음에도 집행과정에서 전용을 통해 5억원이 증액돼 뮤지컬 아리랑의 제작과 2000명 무료초대 등에 사용된 일이 밝혀지기도 했다.
예비비가 정해진 목적과 다르게 집행된 사례로는 2015년 행정자치부가 '긴급신고전화 통합시스템 구축' 명목으로 46억7600만원의 예비비를 배정받았으나 사업 실행주체인 국민안전처가 이를 예비비 사용명세서와 다르게 긴급신고전화 공동관리센터 신규 설계용역으로 9500만원을 지출한 일이 꼽혔다.
이 교수는 "행정법규에 대한 형사처벌은 우리나라 법 상황을 볼 때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오래 전부터 '행정형벌'이라는 이름으로 행정법규의 실효성 확보수단으로 폭넓게 활용돼 왔다"며 "강력한 위하력을 가진 최후의 수단으로서 형벌은 국가재정 투명성, 효율성, 건전성 등 국가재정법이 추구하는 이익을 보호하고 법률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재정법상 유일한 벌칙규정인 제102조 규정만으로는 단지 기금운용에 대한 공무원의 부당한 개입을 처벌하는 데 그치고 기금자산 운용 담당자의 위법행위나 예산의 불법집행을 처벌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금에 손해를 끼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예산의 불법집행에 대해서는 민사책임이나 형사책임과 관련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예산 불법집행에 대한 형사벌 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확장적 재정정책, 경제공황 초래할수도.. 중앙은행 독립 필요"
아울러 이날 세미나에서는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한국이 확장적 재정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재정건전성이 취약해지는 것은 물론 자칫 경제공황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성승제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국가채무를 비롯해 국가부채, 가계부채, 기업부채를 합한 총 부채의 전체규모가 증가일로에 있고 총 부채가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비율일지라도 위험할 수 있다"며 "한국은 계속 부채규모를 확대시켜왔고 이의 이슈화를 피하기 위해 국가채무와 가계부채 상호간을 왕복하면서 경기확대를 위한 재정·금융정책만 계속했다"고 밝혔다.
성 위원은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고 버블만 부풀리는 결과를 낳았다"며 "한국에서 부채가 확대되는 이유는 아마도 정부가 통화를 초과발행하거나 금리인하 등을 통해 통화량 증가를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나 EU(유럽연합) 일본 등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취한 게 아니라 불태화 정책(과도하게 풀린 본원통화가 통화량 팽창 및 물가상승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중간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조치)을 취했을 뿐"이라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취한 곳은 금리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버블을 조성한 한국이나 시중에 유동성을 쏟아부은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라고 말했다.
또 "현실화되리라고 믿지는 않지만 불태화 정책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적 양적완화도 주장되고 있는데 이는 '민주국가의 정부는 화폐발행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라며 "총재화가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경제적 필요에 따르지 않은 화폐발행은 총재화의 소유권 중 추가적 화폐발행으로 증가된 총 통화량 비율만큼을 국민으로부터 탈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거시위기 예방을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중앙은행의 독립성 강화를 들었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강화시켜 무리한 통화완화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성 위원은 "한국은행법은 국채인수를 명시한 규정(제75조 대정부 여신 등)을 두고 있는데 이는 선진국이라면 용납하기 힘든 상상 외의 규정"이라며 "1980년대 후반 일본경제 버블이 터지고 그 이전에도 버블이 더 커지도록 일조한 사건 중 하나가 일본은행이 외부압력에 굴복해 저금리 정책을 시행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