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교복'이라는 '아비투스'

[the L]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당신의 '계급'은 무엇입니까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정유년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뒤숭숭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은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지원하기 위해 수백억 원을 썼다고 한다. 또 다른 재벌, 한화의 3세인 김동선은 유흥업소 종업원을 폭행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기업으로부터 수백억 원을 지원받고 마땅한 수입이 없으면서도 유럽에서 호화생활을 했다는 정유라는 취재진에게 무고함을 호소했다. 김동선에게 폭행을 당한 유흥업소 종업원은 사건발생 2시간 만에 찾아온 한화 임원에게 1000만원씩을 받고 합의서를 써줬다. 대다수의 국민들과는 다른 삶을 누리면서도 너무나도 당당한 상류층들에게 국민들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분노는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정유라와 김동선은 모두 승마선수다. 말은 경마장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승마 체험장이나 가야 노쇠해서 힘이 다 빠진 녀석을 몇 분 탈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다수의 국민들은 정유라 덕에 승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승마선수들이 타는 말이 보통 몇 억에서 비싼 것은 수십 억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는 것은 굳이 알지 않아 될 정보였다. 여기에 승마선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

승마를 할 때는 승마복이라는 독특한 유니폼을 입는다. 물론 대부분의 운동에는 유니폼이 있다. 하지만 여타 유니폼은 운동의 기능에 초점이 맞춰진데 반해 승마복은 전혀 그렇지 않다. 타이트한 바지와 각 잡힌 자켓 그리고 독특한 모자로 이뤄진 승마복은 언 듯 보기에도 말을 타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귀족들의 취미생활에서 시작된 승마의 기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말 한 마리의 가격을 볼 때 귀족스포츠는 승마의 기원뿐만 아니라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1797년 '구별짓기'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는 특정 계급은 생존 과정에서 다른 계급과 구분되는 자신들의 성향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유럽 귀족 사립학교 학생들이 잘 갖춰진 교복을 입는 것은 아비투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승마복 또한 말 타기를 즐기는 귀족들이 하층민들의 취미생활과 구별되기 위해 만들어진 아비투스일 것이다.

매년 겨울이면 일선 학교에서 반복되는 갈등이 있다. 자유롭게 외투를 입고자 하는 학생들과 외투를 규제하려는 학교당국 간의 갈등이다. 몇몇 학교는 아예 교복 외투를 규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한 학교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학생 신분에 벗어나지 않는 단정하고 검소한 코트 류 외투를 착용할 수 있다.
2. 외투의 길이는 치마보다 길지 안아야 한다.
3. 청재킷, 후드 티 등 교복에 어울리지 않는 각종 점퍼 류는 금지한다.
4. 실내 학습활동에서는 외투를 착용할 수 없다.

이를 보면 외투의 종류, 규격 그리고 착용장소까지 규정하고 있다. 학생들에 대한 외투 규정은 대해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마련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에 어긋날 소지가 다분하다. 경기도 교육청은 '학생인권실천계획'을 통해 겨울철 교복 위 외투 착용 허용을 일선학교에 권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교복과 관련된 갈등은 외투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학생들은 치맛단을 줄이고 블라우스를 뒤에서 옷핀으로 고정해 몸매가 드러나도록 만들어 입는다. 남학생들 은 바지폭을 넓혀 힙합 스타일로 만들거나 반대로 좁혀 스키니진처럼 만들어 입는다. 교복 수선은 외투와 달리 1년 내내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왜 허용되지 않는 외투를 입고 교복을 수선하여 모양을 바꾸려 할까? 그리고 학교는 왜 학생들의 교복을 규제하려 하는 것일까? 승마선수들이 말을 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승마복 갖춰 입고, 몇몇 사립학교는 초등학교부터 교복을 갖춰 입는다. 간혹 개인적 일탈은 있겠지만 승마선수나 사립초등학교 학생 중 유니폼을 입지 않거나 수선하여 모양을 바꾸려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교복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은 그저 단순한 10대 청소년들의 일탈일까?

청소년들의 교복, 승마복 그리고 사립초등학교의 교복은 모두 특정 집단을 다른 집단과 확연히 구분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주로 상류층에 국한된 승마와 사립초등학교는 유니폼이 계층의 우월함을 나타내준다. 반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는 상황에서 교복은 그렇지 못하다. 

청소년들은 교복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그렇기에 교복으로부터 일탈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강남에서는 교복을 고가의 제품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강남에 사는 상류층이 평범함을 상징하는 교복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새로운 아비투스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아비투스는(가치평가를 떠나) 사람은 자부심을 느끼는 문화를 스스로 보존하고 계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부심을 느끼는 유니폼(승마복, 사립초등학교 교복)은 강요하지 않아도 착용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유니폼(교복)은 가리려 하고 바꾸려 한다. 학생들이 교복을 외투로 가리고 수선하여 모양을 바꾸려하는 것은 학생이라는 신분에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자부심을 주지 않고 교복만을 강요하는 것은 권위에 의한 억압일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자부심을 느낄 수 없는 교복을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시하는 행위다. 그리고 제11조 제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강남의 고가 교복과 재벌 3세들의 승마는 과연 한국사회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지 의문을 들게 만든다.

정유라와 김동선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국가 상실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 대한 상실, 민주공화국에는 계급이 존재할 수 없고 만약 계급이 존재한다면 그 것은 민주공화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교복을 입어야 하는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승마복이라는 저들만의 아비투스를 보며 다시 한 번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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