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전쟁이 난 것 같습니다. 일명 '최순실 국정농단' 이야기인데요. 최순실씨가 검찰에 출석하자 화가 난 시민이 서울중앙지검 로비에 오물을 투척하고, 또 다른 시민은 포크레인을 끌고 대검찰청으로 돌진해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최씨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지난달 25일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의견을 들었다"며 일부를 시인했습니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시작된 '국정농단'이기에, 대통령이 최씨를 외교·안보를 비롯한 국정에 얼마나 개입시켰는지, 대통령 자신이 미르·K재단 설립과 모금, 운영 등에 얼마나 개입을 했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일 겁니다.

대통령을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인데요.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느냐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합니다. 검찰은 왜 대통령을 수사할 수 없을까요. '소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 국민이 법률전문가가 되어가는 요즘이기에 알아봅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을 재판에 세울 수는 없습니다. 헌법으로 정해져있어서 그렇습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입니다. 이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규정'이라고 합니다.

형법상 내란죄는 정권 등을 차지할 목적으로 헌법을 유린하고 폭동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등 국가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행위를, 외환죄는 적국에게 국가안보 관련 정보나 시설 등 인적·물적 이익을 제공하는 등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 등을 의미합니다. 이는 범죄 수위에 따라 사형에까지 이르는 범죄입니다.

'소추'란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에 심판을 신청해 수행하는 일을 말하는데요. 결국 현직 대통령은 국가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재판에 세울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논란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소추' 할 수 없다는 말이 '수사'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소추'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둘러싸고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뉩니다.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운영 위한 조항인데…

누구 말이 맞나를 따지기 전에 헌법은 왜 이같은 조항을 두고 있는 걸까요. 입법 취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정치적 중심에 서있는 대통령의 업무가 마음에 안든다고 아무나 고소·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대통령은 수사와 재판에 끌려다니느라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임기 중 제대로 통치할 수 있도록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범죄가 아니라면 임기 중에는 각종 송사에서 자유롭게 해주자는 것이 법의 취지라는 것이죠.

하지만 임기를 마치고 나면, 즉 전직 대통령은 '소추'의 대상이 됩니다. 임기 중 잘못한 일에 대해 수사하고 죄값을 물을 수 있습니다. 실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판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법 취지에 대해서는 같은 의견을 내고 있지만, 문제는 '그래서 수사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법조인들마다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소는 못해도 수사는 할 수 있다"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헌법에는 소추만 하지 않는다고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수사는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소추할 수 있는데, 조사 없이는 소추를 할 수 없으니 당장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범죄 행위가 발견됐는데도 수사를 못하고 시간을 보내면, 그 사이 증거가 사라질 것이니 즉시 수사를 하고 퇴임 후 소추를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놔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교수 시절 집필한 헌법학원론에서 "시간이 지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니 대통령 재직 중 행해진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고위법관 출신 A교수는 "대통령 재직 중에는 소추할 수 없지만, 임기를 마치고 나면 할 수 있다는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임기 중 있었던 범죄행위에 대해 퇴임 후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라며 "책임을 물으려면 조사를 해야 하니, 결국 필요한 조사는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보이는데요.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밖에서 책임지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A교수는 "책임지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놓은국회의원 면책특권과는 달리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은 책임을 묻는 기간을 퇴임 후로 미뤘을 뿐"이라며 "대통령에게 면책 특권이 아니라 불소추특권을 둔 것은 대통령이라도 책임은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곧 수사는 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수사는 기소를 위한 것…임기 중에는 수사할 수 없다"

'기소와 수사 모두 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은 '그렇다면 수사가 가능한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결정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법 취지가 대통령의 안정적인 직무 수행을 보장하기 위해서인데 '수사'를 가능하게 한다면 어느 수준부터 수사를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결정을 할 수 있느냐는 거죠.

결국 대통령 수사 결정 여부는 수사기관, 즉 검찰이 해야 할텐데 이를 인정할 수 있는냐는 질문도 나옵니다. 검찰의 결정에 따라 어떤 경우는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 되고, 어떤 경우는 수사를 할 수 없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고위 법관 출신 인사는 "수사가 가능하다고 하면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할지 말지 검찰이 결정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는 받아들일 수 있느냐"며 "수사는 소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임기가 끝나지 않은 대통령은 수사를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적합한 법률 해석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죄 지으면 어떻게 해요?

그렇다면 또 의문이 남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가 있다면, 어떻게 조사를 하고 어떻게 처벌을 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 방법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은 소추할 수 없지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나면 소추가 가능합니다. 수사도 할 수 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역시 시간이 지나면 범죄의 증거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혐의가 아무리 짙더라고 실제 이를 증명해 처벌을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두번째 방법은 탄핵입니다. 대통령이 직무를 더이상 수행하기 힘들 정도의 상황이라면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습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정해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발의하고, 3분의2 이상이 찬성을 해야 합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법적 처벌 규정은 사실상 탄핵이 유일합니다. 고위 법관 출신 인사는 "대통령에 대한 처벌로 탄핵 규정을 두고 있다"며 "법은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소추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만약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문제가 있다면 직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헌법학자를 비롯해 법률가들 사이에서 '불소추특권'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그동안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에 대한 논의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일겁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현 상황은 '헌법'이 생긴 이래 학자들조차 상상해본 적도 없는 사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대한민국의 시간은 멈춰버렸습니다. 이 사태를 수습하는 일은 결국 '진실'뿐일 겁니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