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와 지시를 내리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문제되고 있는 7시간 동안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봤는지 시각별로 밝혀주십시오."

지난 22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의 첫 준비절차기일에서 이진성 재판관은 박 대통령 측에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이 재판관은 "어떤 보고를 언제 받았으며 그에 대한 대응지시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남김없이 밝히고 그에 대한 자료도 제출해 달라"고 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이 사건 2년8개월여 만에 헌재에서 밝혀질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세월호의 진실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에서도 상당 부분 규명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특검 수사선상에 올라있기 때문인데요. 두 사람은 세월호 사건의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습니다.

'올림머리', '필러 수술' 의혹 휩싸인 '대통령 행적'…헌재 "공·사적 업무 모두 밝혀라"

탄핵심판 준비기일에서 이 재판관은 공·사적인 부분을 가리지 말고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모두를 해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앞서 청와대를 통해 공식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적인 업무' 부분에선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정윤회씨를 만났다', '수면제를 복용했었다' 등의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됐습니다.

이중 '박 대통령이 머리손질을 받느라 시간을 허비했다'는 보도가 최근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 6일자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전속미용사로 알려진 정모씨를 청와대로 불러 90분 이상 '올림머리' 손질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같은날 SBS는 박 대통령이 일부러 부스스한 머리모양을 연출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청와대는 즉각 해명에 나섰습니다. 정씨는 오후 3시20분쯤부터 1시간 가량 청와대에 머물렀고, 실제로 머리손질을 받은 시간은 20여분이라는 것이죠.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하기로 결정했고, 머리손질을 받으면서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해명엔 허점이 있습니다. SBS 보도에 따르면 정씨는 대략 오후 1시쯤 청담동 미용실에서 출발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1시 전에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인데요. 박 대통령이 오후 3시쯤 중대본 방문 결정을 내린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최소 2시간 앞서 미용사부터 부른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또 머리손질에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면, 왜 박 대통령이 오후 5시15분쯤에서야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이경옥 당시 안전행정부 2차관에게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며 구조상황을 모르는 듯한 발언도 했습니다.

세월호 수색작업이 한창이던 때 박 대통령이 주름을 펴는 '필러 수술'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2014년 5월13일 국무회의에 나온 박 대통령의 양쪽 입가에 있던 멍 자국이 수술의 흔적이라는 건데요. 공식적인 자격 없이 박 대통령을 진료해 '비선진료' 의혹을 받는 김영재 원장도 해당 사진을 보고 "필러 같다"고 답했습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이날 박 대통령은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다', '대면회의 대신 20~30분마다 유선으로 보고를 받고 업무를 지시했다'고 할 뿐 박 대통령의 정확한 행적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박 대통령에게 필러 수술을 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병우는 '세월호 수사 훼방', 김기춘은 '해명 금지·시신인양 반대' 지시 의혹…특검서 규명될 듯

특검 수사에선 청와대가 세월호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규명될 전망입니다. 현재 의혹의 핵심 인물로는 우 전 수석과 김 전 비서실장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구조과정을 수사 중이던 광주지검에서 해경 서버를 압수수색하려 하자 수사팀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이 서버에 저장돼 있던 청와대의 지시내용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것이죠.

22일 열린 최순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 전 수석이 압수수색 때 윤대진 당시 광주지검 형사2부장과 통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 전 수석이 '서버에는 민감한 통화내용이 있다.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끊어라'라며 제지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우 전 수석은 "윤 검사와 통화했을 수 있다"면서도 "상황만 파악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다시 끊으라고 말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이외에 변찬우 당시 광주지검장은 구조책임자였던 김경일 전 해경123정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라는 청와대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는데요. 그 배경에 우 전 수석이 있지 않았겠냐는 의혹도 있습니다.

김 전 비서실장이 세월호 사건에 외압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은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적혀 있습니다. 이 비망록에서 2014년 7월8일에 작성된 부분에 '세월호 참사 원인-청와대 보고, 그 과정의 혼선 X, 정부가 변명 X'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또 2014년 10월27일자 메모에는 '시신 인양 X, 정부 책임, 부담'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김 전 수석이 김 전 비서실장으로부터 '정부가 직접 나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해명하지 말고, 시신도 인양하게 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고 메모해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에 대해 김 전 수석은 지난 7일 최순실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했습니다.

현재 특검은 우 전 수석과 김 전 비서실장을 수사선상에 올린 상태에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한 수사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특검법에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도 수사대상이 된다'는 규정이 있는 만큼 이같은 의혹들의 실체가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세월호 사건은 헌재와 특검 양측에서 부각되고 있습니다. 사건 후 약 2년이 넘도록 각종 의혹에 대해 입을 닫아온 박 대통령과 관련자들도 더 이상은 해명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희생자 304명의 가족과 국민들의 가슴이 무너졌던 세월호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