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사건 첫 재판에 들어서고 있다./사진=홍봉진 기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국민여러분 용서해주십시오."

국정농단 파문의 최정점에 있는 인물인 최순실씨(60·본명 최서원)가 지난 10월31일 검찰조사에 출석하면서 남긴 말입니다. 대통령과 함께 이번 사태의 내막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최씨의 입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이날 이후 최씨의 행보는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검찰조사에서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혐의 부인' 입장을 고수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잇따른 불출석에 이어 특별검사팀 소환조사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는 어떠한 협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공황장애' '재판 앞두고 부담' 갖은 핑계로 조사 불응

최씨는 국조특위의 청문회 증인출석 요구에 번번이 불응하면서 '공황장애' '건강상의 이유' '형사재판을 앞두고 있어서' 등 이유를 댔습니다. 국조특위는 현행법(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청문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라고 보고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지만 최씨는 이마저 거부했습니다. 결국 김성태 위원장(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0일 최씨에게 국회모욕죄를 적용해 특검에 고발했습니다.

국조특위가 최씨가 수감된 서울구치소의 감방에 직접 찾아가 청문회를 열겠다고 하자 최씨 측은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법원이 최씨에 대해 내년 1월21일까지 변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는 접견할 수 없도록 한 '변호인외 접견교통 금지 결정'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교정당국인 법무부는 "국조특위에서의 면담은 최씨 본인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확인하는 차원에서의 면담이기 때문에 법원의 접견금지 결정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며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모든 국민에게는 증언의 의무가 있고 접견금지 결정을 받은 수용자도 청문회에 출석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 변호사는 주장을 꺾지 않았습니다.

또 최씨는 지난 27일 특검팀의 2차 소환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불응했습니다. 특검은 최씨가 계속해서 출석 요구를 거부할 경우 강제소환을 위해 체포영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태블릿 PC 증거능력·檢 강압수사' 본질 흐리는 주장 이어져

최씨의 이러한 모순은 법정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지난 19일 열린 첫번째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한 최씨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물의를 끼쳐 죄송하고 앞으로 공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가 없지만 최씨는 이날 앞으로 진행될 재판 계획을 미리 살피기 위해 법정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 최씨 측은 "혐의를 전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최씨의 변호를 맡는 이경재 변호사는 "검찰이 제기한 11개의 공소사실 중 8가지는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7),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이 없다"며 "(범죄의) 전제가 되는 공모가 없기 때문에 죄가 인정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또 포레카 지분 인수 관련 강요미수, 더블루K 관련 사기미수 등 혐의도 모두 부인하고, 최씨가 독일에서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무실을 정리하라는 지시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최씨 측은 이어 사건의 유무죄 판단에서 비껴난 변론으로 재판 진행에 제동을 걸기도 했습니다. 핵심 증거물인 태블릿 PC의 증거능력을 문제삼았는데요. 이 변호사는 "최씨가 검찰에 매일 불려가 조사를 받았는데도 태블릿 PC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며 검찰에 태블릿 PC 실물 제출과 함께 입수 경위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카이스트, 서울대에 태블릿 PC 감정을 의뢰해 달라는 신청을 재판부에 냈습니다.

이밖에 최씨가 검찰의 강압수사를 받아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이 변호사는 "기소한 피고인은 조사를 할 수가 없는데 검찰이 기소 이후에도 계속 최씨를 불러 추궁했다"며 "인권침해적인 수사가 많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했습니다. 이에 검찰이 즉각 반박하면서 "기소 이후 추가 조사는 최씨의 동의하에 변호사가 입회한 상태에서 이뤄졌고 강압수사를 한 사실이 없다"고 맞서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집중심리' 속도 내는 재판부…최씨 측 어떤 주장 낼까

지난 29일 열린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최씨 측이 신청한 태블릿 PC감정에 대한 결정을 보류하고 신속한 재판 진행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재판부는 "태블릿 PC가 최씨의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다"며 "이 사건은 증인이 많고 유무죄 심리가 급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내년 1월부터 본격 공판절차로 돌입해 주 2~4회 기일을 열고 집중심리에 나설 방침입니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만큼 신속하고 빠른 결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씨 측이 앞으로 어떤 주장을 내놓을지, 지금까지와 같은 모순적인 입장을 고수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