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나 처벌조항을 둬서 준법지원인 선임의무를 지키지 않는 기업이 없도록 해야한다"

"반강제에 가까운 제재는 재계의 반발만 산다. 변호사를 뽑는 게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해야한다"

2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준법지원인' 제도 활성화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준법지원인 제도에 대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린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약 8년 만이다. 8년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시절 제도 도입을 외쳤던 김현 변호사가 올해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에 당선된 뒤 다시 제도의 정상화에 나섰다.

지난 2011년 3월 국회를 통과해 이듬해인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준법지원인제도는 현재 지키지 않아도 처벌조항이 없어 대상 기업의 약 40%가 지키지 않는 등 사실상 유명무실화 돼 있다. 

이날 토론회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동 주최로 이뤄졌다. 주제 발표를 맡은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준법지원인 제도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점을 크게 △준법지원인을 두어야 하는 상장회사의 범위, △준법지원인의 자격, △준법지원인 미선임 회사에 대한 제재, △준법지원인 선임 회사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로 나눈 뒤 제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준법지원인 선임율은 대상기업의 40%정도 밖에 안 된다. 제도가 온전히 안착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제도의 필요성을 되짚고, 그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 선임 대상 기업 더 늘려야 VS 소규모 기업도 있어 일괄적용은 무리

현행 상법 제542조의 13 제1항에 의하면, 준법통제기준과 준법지원인을 반드시 둬야 하는 회사는 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상장회사다. 준법지원인 제도를 도입할 당시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인 상장회사를 기준으로 했던 것에서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넓힌 것이다.

발제자인 이준길 고문은 "법 위반 등의 문제가 발생된 뒤에 사후적으로 그 책임을 묻는 것보다 사전 예방을 하는 것이 위험을 감소할 수 있는 길"이라며 "현실적으로 갑작스레 적용 대상 회사를 늘리는 것은 어렵더라도 단계적으로 준법지원인 선임 대상 회사를 늘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고문은 "준법지원인 의무 선임 회사를 자산규모가 1000억원 정도인 상장회사로 늘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현행 50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성진 소장(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역시 자산규모 1000억원을 기준으로 삼는 부분에 대해 "의무 선임 대상 기업을 늘리는 것에는 찬성한다"면서 "대신 이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계 입장을 대변한 정우용 전무(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자산규모 1000억원 이상 상장회사로의 일률적인 범위 확대를 부정적으로 봤다. 올해 3월 말 사업보고서 통계에 따르면, 현재 자산규모 5000억원 이상인 회사는 총 321개인데, 1000억원 이상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총 선임대상 회사가 1105개로 늘어난다. 하지만 1천억원 이상의 자산규모를 가진 상장회사라 하더라도 임직원이 200명 미만인 경우가 많고, 일률적으로 이들 회사에 준법지원인을 선임케 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정 전무의 주장이다.

그는 "준법경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존 감사들이 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준법지원인을 별도로 선임해 하도록 강제하는 것의 필요성에는 의문이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 준법지원인의 자격…직역 제한 필요한가?

현행 상법 제542조의 13 제5항에 따르면, 준법지원인은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라 학교에서 법률학을 가르치는 조교수 이상의 직에 5년 이상 근무한 사람, △그 밖에 법률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중에 임명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정우용 전무는 준법지원인을 반드시 특정 직역(변호사)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회사 내에서도 법률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 전무는 “법학을 전공했는데 회사와 관련된 법이 아니라 헌법이나 형법을 공부한 사람은 그런 부분에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준법지원인 미선임 회사를 제재해 선임 강제?

현행 상법과 준법지원인 관련 법령에는 준법지원인을 반드시 두게 돼 있는 자산규모 5000억원 이상의 상장회사들이 이를 선임하지 않은 경우에 제재를 가하는 처벌 규정이 없는 상태다. 이에 대해 발제자 이준길 고문은 "준법지원인 제도를 완벽히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제재와 같은 의무화를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손영화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과태료 규정까지 두는 것에는 반대했다.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제재는 기업들에게 지나치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손 교수는 "상법상 이사의 감사의무와 같은 제재면 족하다"며 "이 정도 제재만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 준법지원인 선임 시 인센티브 부여해 선임 독려 방안도

현행 상법 제643조는 주요 주주와 같은 이해관계자와의 거래 위반죄에 대해 양벌규정을 두면서, 단서 조항에서 회사가 상법상 준법통제제도를 성실히 이행한 경우와 같이 회사가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무에 관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 회사에 부과되는 벌금형이 면제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준법지원인 제도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준법지원인을 선임한 회사에 대해 행정적·형사적, 나아가 민사적인 우대 또는 책임 면제와 같은 인센티브 부여에 대한 논의도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상사법무과 남대주 검사는 상법 규정에 따라 준법지원인 인센티브 부분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시각도 있을 수 있음에 공감하면서도, 제도 확립을 위해서는 인센티브 도입도 필요하다고 봤다. 

남 검사는 "준법지원인 제도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법률 수요자인 기업에게 준법지원인을 선임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이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달렸다"고 말했다.

손영화 교수 역시 인센티브 도입에 찬성하며 현행 상법상 '이사의 책임 제도'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손 교수는 "당연한 것에도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동주 기자(머니투데이 더엘 팀장)는 "회사들이 스스로 준법지원인을 선임해야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기자는 "준법지원인 제도가 안착되지 못한 것은 처벌조항이 없는 탓도 있을 수 있지만, 아직 홍보가 되지 않은 영향도 크다"며, "사내변호사를 채용해 준법지원인으로 운영하는 것의 이점을 변협 차원에서 많이 홍보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기자는 "변호사업계는 재계에 일방적인 준법지원인 선임 요구를 하기보다, 비법조인이나 기업 측에서 스스로 법조인의 도움이 필요하게끔 느끼게 하는 세련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