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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버지와 악마가 나란히 법정에 선다면…"

[the L]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국왕에 맞서다 처형된 英대법관…박근혜정권 눈치 보며 '유죄' 선고 피한 韓사법부


1535년 7월6일 영국 런던. 잉글랜드 대법관을 지낸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단두대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힘에 부쳤는지 그는 사형 집행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를 부축해 안전하게 올라가도록 해주게. 내려갈 때는 내가 알아서 내려갈테니."

단두대 위에 몸을 누이면서 그는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당부했다. 그리곤 "내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으니 구해줘야겠군"이라며 턱수염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영국을 대표하는 '양심적 법조인' 모어는 마지막 순간까지 농담을 할 정도로 의연했다. 그가 반역죄로 처형된 건 국왕 헨리 8세가 새 장가를 드는 데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 8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인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왕비 캐서린과 이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가톨릭 교회법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자신이 수장이 되는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세웠다. 그리곤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라고 선언했다. 

세속 권력보다 종교적 권위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모어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결국 모어는 양심을 지키기 위해 대법관 직을 내던졌다. 하지만 모어는 여전히 추밀원 위원으로서 왕의 신하였고, 새로운 법에 따라 왕의 새로운 결혼을 지지하는 선서를 해야했다. 이를 끝까지 거부한 모어는 런던탑에 갇혔고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순교하기 20년 전에 쓴 '유토피아'란 책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듯 권력에 굴종하는 법관들을 향해 조소를 날렸다. "판사들 간에 이견이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분명했던 일도 아리송해지고 진리 자체가 의문시된다. 이렇게 되면 국왕은 법을 자기 뜻대로 해석할 수단을 얻게 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수치 때문이든 공포 때문이든 거기에 동의하게 된다. 이때 판사들은 주저없이 국왕의 이익을 옹호할 것이다. 국왕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핑계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테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 '사법부 독립'을 강조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사법부가 독립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걸 말해준다. 상고법원 도입처럼 법원이 정권으로부터 얻어내려고 하는 게 있을 땐 더욱 그렇다. 

정권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는 재판에 대해 청와대가 부당한 요구를 했을 때, 법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땅히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의 2012년 대선 댓글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유죄가 확정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2014년 1심은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봤다. 그러나 이듬해 2심은 1심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 사건이 대법원으로 가자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움직였다. 검찰이 찾아낸 문건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법원행정처에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로 회부해달라고 요청했다.

사건은 실제로 전합에 회부됐고, 대법원 전합은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점입가경으로 파기환송심 재판장은 정식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죄' 취지의 판결문 초안을 작성했다. 이른바 '답정너'식 재판이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끝내 선고는 내리지 않고 미적대다가 결국 다른 재판부로 옮겨갔다. 그리고 지난해 정권이 바뀐 뒤에야 파기환송심은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유죄'를 선고했다.

모어가 대한민국 판사들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생전 모어가 남긴 말이 뇌리를 맴돈다. "확실한 것은 내가 재판하는 법정에 아버지와 악마가 나란히 선다고 해도 악마의 주장이 옳다면 악마가 옳다고 판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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