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진=뉴스1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잇따라 대형 사건 수임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와 국회는 전관예우 근절 차원에서 현재 퇴직 후 1년에 불과한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사건 수임 제한 강화를 논의 중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무법인 이제는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 사건을 수임하고 박병대 전 대법관을 담당 변호사로 지정했다.

선 전 회장은 하이마트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2000억원대 손해를 끼치고, 회사 돈을 횡령해 아들 해외유학 자금 등으로 유용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5년, 벌금 300억원을 선고받고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2017년 6월 대법관 임기를 끝내고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2019년 5월까지 근무하다 2020년 개업 신고를 하고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박 전 대법관은 본인이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고영한 전 대법관 등과 함께 형사재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박 전 대법관은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 제작사 크래프톤을 둘러싼 투자 성과급 분쟁 사건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넷이 크래프톤 투자로 '대박'을 내자 케이넷에서 퇴사한 창립 멤버가 회사를 상대로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이다.

이 사건은 1·2심 판단이 엇갈려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된 상태다. 케이넷 측은 상고심에 접어들어 박 전 대법관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주목할 것은 케이넷 창립 멤버 측도 이에 맞서 김소영 전 대법관을 대리인으로 선임했다는 점이다. 김 전 대법관은 2018년 11월까지 대법원에서 근무하다 법무법인 KHL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과 함께 사법농단 의혹으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고영한 전 대법관도 2018년 대법관 퇴임 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활동하며 대법원 사건 변론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는 전직 고위 법관 수임 제한 강화 논의 중… "'대법관 연임제'도 고려해야"현행 변호사법은 사건 수임 제한 기간을 일률적으로 '국가기관 퇴직 후 1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퇴직 후 1년은 너무 짧아 전관예우 근절에 도움이 되지 않고, 퇴임 전 직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1년으로 규정하는 것도 평등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직 퇴임 변호사의 사건 수임 제한 기간을 1년에서 2년 또는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직자윤리법 상 재산공개 대상인 1급 공무원과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은 퇴직 전 3년 간 근무한 기관 사건을 3년간 제한하고, 2급 공무원과 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고등검찰청 부장검사 등은 퇴직 전 2년 간 근무했던 기관 사건을 2년 간 수임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변호사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해 6월 제안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제20대 국회에서 유성엽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이 대법관의 사건 수임 제한 기간을 5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변호사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 대법관부터 판사 직급에 따라 구체적으로 수임 제한에 차등을 두는 법안은 아직 발의되지 않았다.

법조계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 제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지 않으면 전관예우가 근절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년 뒤, 3년 뒤라고 해도 대법관이라는 존재의 영향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현실적으로 (사건 수임 제한 기간을) 몇 년으로 정한다고 해서 입법취지가 달성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법관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것이고 그 외의 방법은 다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한국처럼 좁은 사회에서 몇 년이 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대법관했는지 여부를 모를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전관을 막기 위해서라면 (사건 수임 제한 기간을) 5년으로 해도 효과가 떨어진다"며 "대법관 임기가 6년이니 (제한 기간을) 6년으로 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관 연임제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 전 회장은 "대법관에서 퇴임하는 시점을 보면 빠르면 55세, 60세에 가장 많이 나온다. 아직 혈기왕성하고 일할 수 있는 나이"라며 "능력있는 분들은 대법관을 연임하게 하면 본인도 명예롭게 대법관으로서 법관 일생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