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씨(38)가 18일 재심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광주지법 해남지원 법정을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고 15년째 복역 중인 김신혜씨(38·여)가 다시 한번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법원이 복역 중인 무기수에게 재심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씨의 사건은 지난해 한 언론보도로 인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미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은 김씨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김씨가 줄곧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 탓에 혹시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지난해부터 김씨의 재판기록, 재판 이후 발견된 증거들 등을 모두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15년 전 경찰이 구타와 협박 등 반인권적 방법을 사용해 수사를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만약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사실이었다면 재판에서 적법한 증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변협은 지난 1월 재심청구를 제기했고 광주지법 해남지원(지원장 최창훈)은 10개월 만인 지난 18일 재심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15년 전, 그녀는 어떤 일을 겪었던 걸까요?

◇2000년 3월7일, 전남 완도에서는…"보험금 노린 범행" 발표

사건은 2000년 3월7일 전남 완도군 인근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당시 53세였던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경찰은 처음에 이 사건을 단순 뺑소니 사고로 판단했습니다. 사체가 도로에서 발견됐고 주변에서 자동차의 깨진 라이트 조각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사체에 외상 흔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 남성이 타살된 후 교통사고로 위장됐을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결국 사건 발생 며칠 후, 경찰은 피해자의 딸인 김씨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경찰은 김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가 지속적인 성추행 탓이라고 발표합니다. 또 김씨가 숨진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을 가입했다고 밝힙니다.

경찰은 서울에 거주하던 김씨가 사건 당시 고향인 전남 완도로 내려갔고 늦은 시간 미리 준비해 둔 수면제를 양주에 탄 뒤 아버지에게 마시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김씨는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했고, 아버지가 정신을 잃자 집에서 7㎞ 떨어진 곳에 버려두고 돌아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범행에 사용했다는 수면제를 어디서 구입했는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또 양주병과 술잔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김씨가 "증거를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합니다.

◇결백 주장하는 김씨…"남동생 위해 거짓 진술한 것"

수사 초기 범행을 자백했던 김씨는 이후 진술을 뒤집고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김씨는 남동생을 위해서 거짓 진술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고모부를 만났고, 고모부가 "네 남동생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 같다. 네가 성추행 당한 것 때문에 살해했다고 얘기를 하면 감형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해 이에 따랐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남동생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자신이 희생하는 마음으로 자백을 했는데 유치장에서 생각해보니 남동생이 절대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진술을 번복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스물네살이 되던 해인 2001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게 됩니다. 김씨는 복역 중에도 계속해서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자신의 누드 사진을 보여주는 등 협박을 하면서 자백을 강요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과거 연극배우로 일하면서 누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이를 유포할 것처럼 심리적인 압박감을 줬다는 겁니다.

김씨 측은 경찰 조사 결과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앞서 경찰은 김씨가 30알 정도의 수면제를 양주에 탔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요. 실제 김씨 아버지의 사체에 대한 부검 결과 수면제 100알 정도의 양이 검출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같은 발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김씨 측은 또 경찰이 주장하는 보험 가입 여부도 사실은 아버지가 자진해서 가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무죄 판단 달라질 수 있을까…재심 결정 배경은?

법원이 김씨의 재심 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위법한 부분이 있었다는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하고 이 과정에서 사법경찰이 참여한 것처럼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또 김씨가 현장 검증을 거부했는데 영장 없이 데려가 억지로 범행 재연을 하도록 한 점도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씨에게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면서 김씨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된 증거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보험금 수령 목적이 없었다" 등 김씨의 주장이나 새롭게 제출한 증거들은 새롭거나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 재판 기록에 따르면 김씨에게 불리한 정황도 있습니다. 김씨가 유치장에 있을 당시 쓴 편지에 자신의 지인에게 "사건 당시 나와 있었다고 얘기해 달라"고 한 부분이 발견된 겁니다. 또 범행 과정이 상세히 적힌 김씨의 노트도 발견됐습니다.

결국 법원이 재심청구를 받아들인 것은 '김씨에게 유죄가 선고된 것은 잘못된 판단이니 다시 재판을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절차상 위법이 있으니 재판을 통해 다시 한 번 적법한 증거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판단됩니다.

15년간 결백을 주장해 온 여성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각종 의혹과 증거들만으로는 진실에 다가가기 쉽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15년 전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앞으로 진행될 김씨 사건의 재심을 맡게 될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랍니다. 억울한 자의 울분을 풀어주고, 죄가 있다면 엄히 벌을 내리는 것. 그것이 사법부가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