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 /사진=뉴스1

헌법재판소가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 등에 대한 범죄 수사를 위해 감청 등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규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지 못했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인이 숨진 데 따른 결론이다.

헌재는 25일 범죄 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 허가 요건 등을 규정한 통비법 제2조 제7호, 제5조 2항, 제6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심판 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심판 절차 종료는 헌재가 절차상 문제 등을 이유로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헌법재판소법은 청구인이 사망한 경우 심판절차 종료를 선언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청구인이 침해받은 기본권이 소송 수계인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위헌 여부를 가린다.

이와 관련, 헌재는 "청구인 김모씨는 지난해 9월 사망했다"며 "청구인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사생활 비밀의 자유 등 기본권은 그 성질상 승계되거나 상속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이 헌법소원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미 유죄판결이 확정된 김씨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 심판 사건은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김씨가 2011년 제기한 것이다. 당시 그는 남북정상회담 합의문과 관련된 시험 문제를 냈다는 등의 이유로 국가정보원의 수사를 받던 중 부당한 '패킷 감청' 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2010년 12월∼2011년 2월 서울중앙지법의 허가를 받아 김씨가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이메일과 가입한 카페 등을 확인하고 통화내역을 감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인터넷전용회선에 대한 감청, 이른바 '패킷 감청'도 이뤄졌다. 이같은 국정원의 수사는 범죄 수사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의 허가 요건과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는 통비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서울중앙지법의 허가와 국정원의 집행 행위에 대한 위법확인 소송을 내는 한편 통비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김씨는 현행 통비법이 통신비밀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패킷 감청'이란 인터넷 회선 전자신호인 패킷을 중간에서 빼내 사용자의 컴퓨터와 똑같은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감청 방식을 뜻한다. 이 방식은 범죄 혐의와 무관한 정보도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