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주주총회는 상법상 보장된 주식회사의 최고 의결기구다. 하지만 주주총회의 졸속진행에 대한 우려는 오랜 기간 제기돼왔다. 특히 전문가들은 최근 상법의 개정과 원샷법 제정 등으로 주주총회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머니투데이 더 엘(The L)은 정기주총시즌을 맞이해 주총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the L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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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1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합병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맞이해 영혼없는 기관투자자들의 '거수기 투표', 주주 참여 미흡으로 인한 잇따른 '날림주총' 등에 대한 우려가 잇따르는 가운데 IT기술이 주주총회 실효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미 국내에서는 2009년 5월 상법개정을 통해 전자투표제가 도입됐고 2014년 1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자적 방식으로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도록 규정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을 활용한 의결권 행사는 매우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는 기업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한국예탁결제원이 이미 구축한 전자투표 시스템을 활용토록 하고 있다. 지난해 예탁원과 전자투표 시스템 계약을 맺은 상장사는 416개사였고 이 중 377개사가 전자투표를 활용했다. 올해도 지난달 말까지 225개사가 신규로 전자투표 시스템 계약을 예탁원과 체결했다. 일반 주주들은 예탁원의 전자투표·위임장 사이트(http://evote.ksd.or.kr)에서 전자적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위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주주 입장에서의 이의 활용도는 매우 낮다는 지적이다. 황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투표, 전자위임장 제도를 활용한 기업의 전자투표 행사율은 주식 수 기준 1.62%, 주주 수 기준 0.24%에 불과했고 전자위임장 행사율은 주식 수 기준 0.14%, 주주 수 기준 0.003%에 그쳤다. 전자적 방식에 따른 의결권 행사를 권유하는 데 있어 기업들이 다소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기업들이 전자투표 등을 활용할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당초 지난해 1월 폐지될 예정이었던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이 3년간 유예되는 과정에서 전자투표를 활용하는 기업만 섀도우 보팅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섀도우 보팅이란 주주의 주총참여율이 낮은 상황에서 의결정족수를 맞추기 위해 1991년 도입됐다. 주총현장에 참석한 주주들이 특정 안건에 대해 찬반의사를 각각 표시할 경우 예탁원이 실질주주들을 대신해 주총장에 참석한 찬반주주의 비율대로 기계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일반주주들의 주총참여율이 극히 미미한 현실에서 사실상 지배주주나 경영진의 의사가 일방적으로 반영되기 쉬운 제도이기도 하다.
2009년 상법에 도입된 전자투표 활용기업이 극히 미미하다가 지난해에 416개, 올해 225개사가 신규로 전자투표를 활용키로 한 배경에도 섀도우보팅을 활용하려는 목적이 컸다.
여전히 섀도우보팅 존치에 대한 상장사 측의 주장은 강경하다. 코스피 상장사들의 모임인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의결정족수 완화 등을 규정한 상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주총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섀도우보팅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별도의 돈을 들여 예탁원과 전자투표 계약을 체결하는 기업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전자투표를 통한 주주참석률을 높이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학계 관계자는 "주총참석률을 높이기 위해 주총현장에서 주는 선물 대신 전자투표 참가자들에게 커피 기프트콘을 주는 등 노력을 기울인 기업이 얼마나 되냐"며 "지금까지처럼 섀도우보팅을 유지하기 위한 상장사들의 꼼수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미 전자투표 등 도입으로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일반주주의 참여를 독려할 방법이 있음에도 상장사가 일반주주 참여율 제고를 위한 노력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나아가 전자주주총회(일명 가상주주총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도 있. 윤영신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이미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덴마크 등이 2001년부터 2012년에 걸쳐 전자주주총회를 도입했다. 터키는 아예 상장사로 하여금 전통적 방식의 주총과 전자주총을 병행토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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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지난달 오픈한 의결권 정보광장(http://vip.cgs.or.kr) 화면. 개별기업이 주총에 상정한 안건의 세부적 내역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사진=한국기업지배구조원 |
이외에 기존 전자투표제도의 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지난달 론칭한 의결권정보광장(http://vip.cgs.or.kr)이 한 예다. 현재는 코스피 상장사에 대해서만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만 향후 서비스 확대개편을 통해 코스닥 상장사까지 아우를 예정이다. 여기에서는 개별기업에 대해 지배구조원이 매긴 지배구조 등급 뿐 아니라 기업이 공시한 주총안건의 세부적 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특정 기업의 개별 안건에 대해 어떻게 투표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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