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대심판정.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 및 시위를 모두 금지한 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29일 이같은 내용의 구 집시법 3조 1항 등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구 집시법 3조 1항은 재판의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거나 미치게 할 목적의 집회나 시위 또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나 시위를 모두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법 14조는 '이 조항을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구 집시법 3조 1항의 3호는 6.25 전쟁 및 4.19 혁명 이후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과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우리 헌법의 지배원리인 민주적 기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방어적 장치로 도입된 것이어서 그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된다"면서도 "규제대상인 집회·시위의 목적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박탈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집회·시위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조금이라도 위배될 경우 처벌이 가능하고, 사실상 사회 현실이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집단적인 의견 표명 일체를 봉쇄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회나 시위를 규제하는 것은 사법작용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국가의 사법권도 국민의 의사에 정당성의 기초를 둬야 한다"며 "재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오히려 사법작용의 공정성을 제고할 수 있으므로 이 조항이 사법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어떤 집회가 규제대상인지에 대해 아무 규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집행기관의 자의적 판단 여지를 뒀다"며 "이는 사실상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원혜영(65·경기 부천시 오정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신 독재정권 당시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976년 9월 유죄를 확정받았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해 재판을 받던 중 법원에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원 의원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면서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적 기본질서'란 시대적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모호한 기준이어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전주지법도 1978년 8월 전주에서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모씨(65)의 재심 사건을 심리하던 중 이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제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