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으로 판사들이 모여들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사법권력 교체기에 진행된 전국법관대표회의(판사회의)에서 92명의 판사들이 '법관의 꽃'으로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폐지'에 의견을 모았다. 소수만 승진할 수 있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자리를 두고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는 등 법관으로서의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11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3차 판사회의에서 각급법원의 대표 판사 92명은 △선발 방식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 폐지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법관 인사의 이원화 등을 의결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현행 방식을 따르지 않고 두 법원의 인사를 분리해 진행하자는 취지다.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20분쯤부터 오후 8시40분쯤까지 약 10시간20분동안 진행됐다.

판사회의 관계자는 "일정 연차 이상의 지법 부장 중 일부를 고법 부장에 발탁하는 그 고리를 끊는 것이 이원화"라며 "내년 정기인사부터 반영돼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내년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대상인 사법연수원 25기가 여기 해당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행정부 차관급으로 승진 숫자가 제한돼 있어 인사권을 지닌 대법원장의 영향이 크게 미치는 자리다. 이 때문에 판사들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꾸준이 제기돼왔다. 승진에 탈락한 판사가 법복을 벗는 관례, 사법행정에 순응하는 '법관관료화' 문제도 불거졌다.

관련 논의는 20여년을 끌어온 만큼 더 늦게 전에 다음 정기인사부터 이날 결의안의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는 게 판사들의 입장이다. 판사회의 관계자는 "논의가 1993년부터 시작된 데다 2009년 법관 설문조사 당시 응답자의 90% 이상이 지방-고등법원 법관 인사 이원화 방안에 찬성했다"면서 "이에 따라 2011년 인사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으나 2015년 법원행정처가 다양한 인사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서며 이원화 제도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했다"고 꼬집었다.

다만 판사회의 의결 사항은 구속력이 없어 결정은 신임 대법원장의 몫으로 남게 된다. 판사회의 관계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보임과 관련한 결정은 사법행정권자에 달려있다"며 "이번 판사회의 결의안은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자는 게 아니라 있던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자는 선언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날 판사회의에서는 인사와 관련, △법원 사무분담에 법관 의사 반영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근무평정 △법관 전보 인사 최소화와 장기근무제도 시행 등도 의결했다. 또 사법권력의 재편을 앞두고 있는 만큼 사법개혁을 향한 제도 개선 방안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졌다. △집중된 법원행정처 기능 분산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사법행정에서의 역할과 권한범위 구체화 등이 여기 해당한다.

판사회의 관계자는 역할과 권한범위에 대해 "대법원 규칙 제·개정에 대한 의견 제출, 대법원 내규나 예규 수정·변경 요구, 각종 사법행정 위원회에 위원 추천, 사법정책과 관련한 의견 제시 및 제도개선안 건의 등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판사들은 이날 판사회의를 연 2회 상설화하는 방안에도 의견을 같이 했다. 판사들은 매년 4월과 12월 연 2회 판사회의를 여는 것이 적당하다고 봤다. 또 판사회의의 정식 명칭은 종전대로 전국판사대표회의가 아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적절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헌법에 판사가 아닌 법관이란 표현만 쓰여있다는 이유에서다.

회의에 대표로 참석하는 이들은 판사 30명당 1명꼴로 정하기로 했다. 전국 판사가 약 3000명이라는 점에서 판사회의 정원은 현행대로 100명 수준이 유지될 전망이다. 또 앞으로 대표 판사는 무기명 투표에 의해 선출하기로 정했다.

아울러 판사회의 구성과 관련한 결정은 대법원 규칙에 명시하기로 했다. 판사회의는 이같은 논의 내용을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가칭)에 담기로 의결했다.

이날 판사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은 양승태 대법원장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법원장 교체기인 만큼 요구사항을 어느 한쪽에 전달하기가 시점상 애매한 탓이다.

판사회의 관계자는 '후임 대법원장에게 그간의 회의내용을 전달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진 않았다"면서도 "제도 개선과 관련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내용인 만큼 신임 대법원장이 입장을 밝혀주지 않을까 한다"며 새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뜻을 시사했다.

이어 김 후보자를 언급하며 "본인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할 것이고 내일부터 진행되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질의를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12~13일 이틀간 진행된다.

한편 4차 판사회의는 오는 12월4일 오전 10시부터 사법연수원에서 열린다. 신임 대법원장 임기가 오는 25일부터 시작되는 만큼 12월 회의에서는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