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벌어진 대법원과 LG씨엔에스 (50,900원 500 -0.97%) 사이의 100억원대 정산 분쟁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해당 전자소송 시스템 유지관리 사업을 다시 LG씨엔에스가 맡게 됐다. 공공SW(소프트웨어) 사업 특성상 미정산을 이유로 유지 업무에 손을 뗐다가 추후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업계에선 적정한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사한 분쟁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27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LG씨엔에스는 지난달 29일 대법원이 발주한 사법업무전산화시스템 운영 및 유지관리사업을 108억원에 수주했다. 올해 초 개통한 전자소송을 비롯한 법원 전산시스템 전반을 관리하는 일이다.

이 사업은 매년 사업자를 선정해왔지만 2023년 이후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가 전무했다. 부족한 예산 탓이었다. 조달청이 수차례 입찰공고를 냈음에도 지원이 없어 과업범위를 줄인 끝에 LG씨엔에스가 단독으로 응찰해 사업을 맡게 됐다.

◇100억원대 분쟁 계속되는데 100억원대 추가 사업 계약LG씨엔에스는 대법원과 1년 넘게 100억원대 정산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과정에서 유지관리사업을 맡게 됐다. LG씨엔에스는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계약서에 없던 추가과업을 지시받았다며 대가를 요구했고 대법원은 계약금액 증액이 필요한 과업 추가는 없었다며 맞서왔다.

이에 LG씨엔에스는 지난해 1월 202억원을 더 받아야 한다며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조정을 신청했다. 분조위는 202억원 중 122억원 상당은 인정될만 하다며 추가 협의를 통해 타협점을 찾으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분조위는 당사자 쌍방 합의 또는 제3자 감정으로 정산액을 산정하라고 했지만 양측이 원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대법원은 정산액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아 예산 집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기획재정부도 해당 조정안만으로는 추가 예산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 측은 정산액 등을 지속적으로 협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은 지난 1월 일정대로 개통됐다.

LG씨엔에스 관계자는 "차세대 전자소송 구축 주사업자인 만큼 향후 안정적인 시스템 운영에 기여하기 위해 유지관리 사업에도 참여했다"며 "과업분쟁 관련해서는 고객과 합의점을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반복되는 분쟁…이유는 감사 우려와 예산 삭감업계에서는 이번 일이 공공SW 사업구조의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추가 과업 지시에 협조하지 않으면 향후 계약 기회를 잃을 수 있어 울며겨자 먹기로 대응하지만 정작 비용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발주기관 입장에서도 과업변경과 이에 따른 추가예산을 요청하면 감사때 지적을 받을 수 있어 기업이 민사소송을 통해 지급판결을 받도록 할 수 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판결이 나오면 감사도 받지 않고 기재부에서도 예산이 바로 지급된다. 다만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소 몇 년이 걸려 그 사이 사업을 딴 기업은 속이 탈 수밖에 없다.

공공SW 사업의 경우 쉽게 예산이 삭감되는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은 법원이 사업계획안에 제시한 구축사업비가 2039억원이었으나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거쳐 1561억원, 기재부 심의를 거쳐 665억원으로 떨어졌다.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도 법무부가 2248억원을 제시했지만 예타를 거쳐 1938억으로 감액됐는데 발주액은 131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예산은 삭감되는데 과업은 줄지 않으면서 분쟁은 반복된다. 차세대 킥스(법무부)와 차세대종합금융시스템(우정사업본부) 모두 유사한 이유로 기업 측과 추가과업 관련 분쟁이 진행 중이다.

공공SW 발주사업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기재부에 증액을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일선 현장과 인식 차이가 크다보니 업무에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