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법원, 로고, 법원로고 /사진=김현정

술을 마신 채 전동휠을 몰다 경찰로부터 10만원 범칙금을 낸 피고인에 대해 수사기관이 착오가 있었다며 다시 형사 처벌을 하려 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범칙금 부과와 형사 처벌은 다른 처분이지만 같은 행위에 따라 한 차례 범칙금을 이미 납부했다면 형사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면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면소는 법원에서 형사사건을 판단할 때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특정한 사유가 있어 공소를 기각하는 대신 '면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더 이상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도록 종결하는 제도다.

경찰은 2023년 6월28일 오전 4시35분쯤 경기 오산시의 한 음식점에서 "술에 취해 전동휠을 운전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했다. 경찰은 A씨가 얼굴에 홍조를 띠고 일행과 술을 마신 정황 등을 근거로 입김을 불어 넣는 방식의 음주 측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A씨는 약 30분 동안 측정에 불응했다. 개인형 이동장치 탑승자가 음주측정을 거부하면 범칙금 처분을, 원동기장치자전거 탑승자가 음주측정을 거부하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

경찰은 당시 A씨의 전동휠이 개인형 이동장치라 판단, 그에게 범칙금 10만원을 부과했다. A씨는 약 2주 뒤 10만원의 범칙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이후 경찰은 전동휠이 실제로는 개인형 이동장치가 아닌 원동기장치자전거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원동기장치자전거라면 자동차 등에 준하는 형사 처벌 규정이 적용돼야 하지만, 경찰이 이를 간과하고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가벼운 개인형 이동장치 기준으로 범칙금을 통고했던 것이다.

이에 경찰은 잘못된 통고처분을 '오손(誤算·착오) 처리'하고 사건을 음주 측정거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A씨의 음주측정 거부 혐의에 대해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도로교통법 제164조 제3항에 따르면 범칙금을 납부한 사람은 범칙 행위에 관해 다시 벌 받지 않는다"며 면소를 선고했다. 착오로 인한 통고처분이었더라도 납부가 완료된 범칙금에는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에 적용해야 할 사안을 개인형 이동장치로 잘못 처리한 이상, 범칙금 납부 자체가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도 "당초 수사기관이 범칙 행위로 판단해 통고처분을 한 이상, 범칙금 납부 사실은 동일한 기초 사실관계 전부에 효력을 미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에 법리 오해나 자유심증주의 위반 등 잘못이 없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특정 범칙 행위에 대해 이미 범칙금이 납부됐다면, 이는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1호(확정판결이 있는 때)에 준하는 효과가 있어 다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