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People Politics Law…'국민'이 원하는 건 좋은 '정치'와 바른 '법'일 겁니다. 정치권·법조계에 'PPL'처럼 스며들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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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법학적성시헙 고사장 전경/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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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4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긴급회의에서 오수근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스1 |
어느 국회의원 사례다. 학창 시절 성실하고 성적이 우수했다. 그런데 고3시절 투병생활로 원하던 서울대에 떨어지고 4년 장학금을 준다는 소위 서울 중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절치부심해 20대 초반에 행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국 공무원 사회는 철저한 학벌 사회였다. 학벌로는 '마이너'였던 그는 서울대 중심의 고위 공무원 사회에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밤샘과 주말반납을 해야했다. 그렇게 소위 '퍼포먼스'를 하지 않으면 사회는 그의 능력을 그의 출신학부 순위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로스쿨 서류평가기준에 따르면 이 국회의원의 출신학부는 가장 낮은 등급인 'D'등급이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행시에 합격한 노력형인 그도 학벌차별로 문제가 된 그 로스쿨에 진학하기 힘든 셈이다. 이번 사례에 대해 소위 마이너 학부 출신들은 저마다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대입에서의 좌절이나 불운이 남은 인생을 좌우하는 정도가 심한 게 한국 사회기 때문이다.
◇'학벌 줄세우기'는 로스쿨 교수들 무능 자처한 것
로스쿨 입시에서 학벌차별 의혹이 제기됐다. 출신 학부에 따라 5단계로 나눠 서류평가 차등을 뒀다는 것이다.
그간 로스쿨 입시에 학벌과 나이에 따른 차별이 있을 것이란 얘기가 계속 돌았다. 로스쿨 개원초에 비해 8년차에 접어들면서 입학생들의 주류가 점점 소위 SKY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학생들로 채워지는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로스쿨 교수들은 그동안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항변해왔다. 지난달까지 전국 25개 로스쿨 원장단 협의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을 맡았던 오수근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서류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90점을 줬느냐를 자세히 알고 싶다는 것은 주관적 평가를 믿지 않는 것"이라며 "학점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로스쿨 입시 불투명성의 핵심은 각 로스쿨의 주관적 평가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학벌·나이 차별이 서류단계부터 적용됐다면 이는 정당한 주관적 평가도 아니다. 손쉬운 줄세우기일 뿐이다.
서류평가 잣대가 자신없어 학벌로 줄세웠단 얘기 밖에 안 된다. 그만큼 교수들은 학생선발에 자신이 없었고 무능하다는 고백을 한 것이다. 학생선발의 어려움을 겪을 교수들 입장을 좋게 이해해보려해도 리트와 학점, 영어, 논술로는 부족해 결국 학벌 줄세우기를 택했단 건 게으름을 자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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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등에 보도된 모 로스쿨 서류평가기준/정리=이지혜 디자이너 |
◇헌법 '기회 균등' 가르칠 로스쿨서 학벌 차별했다니
물론 로스쿨커뮤니티에서도 '학벌차등'을 옹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리트 등을 보완할 다른 잣대를 찾지 못해 학벌을 '검증된 성실성'으로 평가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실제 문제가 된 학교는 학벌차등 항목을 '성실성'으로 표시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채용 등에서 사실상 학벌차등이 있는데 왜 로스쿨만 문제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그런 현실론도 문제다. 학벌차별이 사회적 현상이라면 오히려 로스쿨에서만은 그래선 안 된다. 예비 법조인을 기르려면 '정치적 올바름'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헌법 수업에서 '기회의 균등'을 가르칠 로스쿨이라면 말이다. 기회 균등을 운운할 로스쿨 교수들이 정작 입시단계에서 학벌차별을 당연한 듯 서류평가에 반영했다면 위선적 태도다.
학벌을 점수화해 서류평가에 넣겠단 발상 자체도 문제지만 그 배점도 놀라울 정도다. 등급간 차를 7점이나 둬, 중위권 대학 출신이 전문 자격증(2~5점), 높은 리트점수(3.5점)로도 서울대 등 소위 명문대 졸업생을 도저히 넘을 수 없게 했다.
◇로스쿨 입시에 대한 국민 관심·기대 외면하는 로스쿨·교수들
이쯤되면 국민들이 로스쿨 입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을 정작 로스쿨 교수들은 정말 모르는 듯 하다. 법전협은 지난달 13일 총회를 통해 응시원서 및 자기소개서 가이드라인 설정을 합의했다. 전형결과 공개와 면접 투명성 보장도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각 학교 입학전형계획에 재량껏 적용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교육부 전수조사발표까지 이어졌던 불투명 입시 의혹에 대한 답으로 자기소개서 기재금지사항 설정이나 블라인드 면접 도입 등을 하겠다면서도 이를 각 학교에 강제하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학벌 차별이 로스쿨 입시에서 '필요악'이라고 믿는 교수들도 상당할 것이다.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사가 공적 책임을 갖는다는 건 그들도 법조윤리를 배웠다면 모두 알 것이다.
변호사 양성기관인 로스쿨도 마찬가지다. 다른 대학원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로스쿨에서 학벌차별은 안 된다. 학벌차별마저 옹호한다면 로스쿨 단일제도로의 법조인 양성제도 일원화 명분은 약해진다.
재학생 단체와 로스쿨 변호사 단체는 이미 공식적으로 학벌차별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일부 구성원이 학벌차별을 옹호하거나 학부 덕에 로스쿨을 들어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들의 대표기구는 최소한 올바른 가치관을 보여줬다. 이제 교수들이 답할 차례다. 학벌차별이 부당한 건지 합리적 차별인지 그들의 판단을 국민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로스쿨은 교수들의 것이 아닌데 일부 교수들은 그런 착각을 하는 듯하다. 법조인을 기른다는 공적 임무를 로스쿨 인가를 통해 잠시 내준 것 뿐이다. 그것은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도 규정돼 있다. 그들의 입맛에만 맞는 소위 명문대 출신 어린 학생들만 뽑는 것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방향은 아닐 것이다.
◇법 근거도 없는 '자율' 남용…학벌·나이 등급제로 한계점 달해
로스쿨 도입 취지도 다양한 분야 사회 경력자를 법조인으로 길러내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로스쿨은 사회 경력에 전혀 가점을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사회경력자는 감점된다. 그런데 사회활동 경력을 봉사활동과 같이 입학전형에 활용해 가점을 줄 수 있다고 오히려 법에 규정돼 있다. 결국 교수들은 관련 법 취지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셈이다.
로스쿨이 계속 이렇게 도입취지나 사회와 국민의 기대와 다르게 교수들의 입맛대로 운영된다면 법조인 양성제도 경쟁에서의 명분도 약해진다.
또한 로스쿨 교수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입학전형의 자율성이라는 대원칙'도 전제부터 잘못됐다. 그들이 누리는 자율성은 최소한 로스쿨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곳이란 전제에서 사회가 '믿고' 내 준 것이다. 그점을 '학벌·나이 등급제'를 만든 장본인일 로스쿨 교수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교수들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하는 '자율권'은 사실 관련 법에 명시된 것도 아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자율'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세세하게 설치·운영 기준을 규정해 자율을 배제하고 있다.
각 로스쿨에 부여된 자율은 법에 규정못한 사소한 부분과 특성화 분야에 대한 것 등으로 제한된다. 설치인가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에 미국 로스쿨식 자율성이 부여된 것으로 오해됐을 뿐이다. 각 학교와 교수들의 '자율 남용'이 계속된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동안 누린 자율은 언제든 박탈될 수 있다. 그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주의 철폐는 쉽지 않다. 기득권을 쥔 사회 주류들이 명문대 출신들이고 그들이 대학 졸업장 하나로 따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너무 달콤해서이기도 하다. 대부분 소위 명문대 학부출신일 로스쿨 교수들이 학벌주의 타파가 아니라 학벌 차별에 나섰다면 비난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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