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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과로에 대한 구체적 기준 부재로 근로자·공무원이 투병·사망하는 경우 재판부마다 업무 연관성을 달리 판단하고 있어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사건 처리율이 전국 평균에 비해 높아 업무 시간이 평균에 비해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뇌출혈 발병 전 통진단 대리투표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되고 어려운 사건들을 처리한 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해 심신의 안정감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했다.
◇주방장 뇌출혈 뒤 사망…'초과 근무했지만 단순업무 반복…산재아냐'
지난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강석규)는 중국음식점 주방장으로 일하던 박모씨 아들이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하루 뒤인 21일 같은 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김국현)는 전모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 달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주방장 박씨는 중국음식점에서 야간 주방장으로 근무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수술 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3달 뒤 사망했다. 유가족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과중한 근로시간 등으로 인해 뇌출혈이 발생해 사망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근무 중 대기시간이 길고 업무 부담 및 강도가 낮아 업무와 상병 사이 인과관계가 크지 않다"며 이를 거절했다.
법원은 "박씨의 업무시간이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인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기는 했지만,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뇌출혈이 생겼다고 인정할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30~40년간 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주방장 업무에 충분히 적응했을 것이고 비교적 단순한 업무의 반복이고 수시로 휴식시간이 있어 육체적 부담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사망 무렵 건강이나 뇌혈관에 영향을 줄 정도의 의미있는 업무 환경의 변화나 업무량 증가는 없었다"고 봤다.
아울러 "오히려 당시 만 51세였던 박씨 나이나 뇌출혈의 주요 위험인자로 알려진 흡연습관이 발병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업무가 아니라 흡연으로 인한 발병가능성을 언급했다.
◇부장판사 뇌출혈 수술 투병…'집중력 필요 심리적 압박감…업무과중'
반면 전 부장판사에 대해선 다르게 판단했다. 업무와 과거 고혈압 병력 등을 고려해 뇌출혈 발병이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전 부장판사의 고혈압이 누적된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자연적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돼 뇌출혈로 이어졌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2013년 11월 샤워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진 전 부장판사는 뇌출혈 진단을 받고 수술 후 투병 중이다.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요양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연금공단은 "현직 법관으로 수행해야 할 통상적 업무정도에 불과할 뿐 과중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무상 요양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연금공단과 달리 업무 과중을 인정했다. 특히 "전 부장판사가 형사단독 재판과 영장전담 업무를 반반씩 담당했는데 이는 하나의 업무만 담당하는 것보다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장전담 업무는 당일 내 인신구속 여부 등을 판단해야 하는 업무로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게 미칠 영향이 커 심리적 압박감을 받는다"며 "형사단독 재판 업무도 피고인의 구속, 처벌 여부 및 양형 등 피고인의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 등에 직접적 제한을 가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어서 업무 스트레스가 크다"고 강조했다.
또 △사건 처리율이 전국 평균에 비해 높아 업무 시간이 평균에 비해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뇌출혈 발병 전 통진단 대리투표 사건 등 사회적 이슈가 되고 어려운 사건들을 처리한 점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해 심신의 안정감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했다.
◇업무과중, 대법원 판단도 '그때 그때 달라요'
반면 지난해 6월엔 과로 상태에서 출근 독촉 전화에 출근준비를 하다 뇌출혈로 숨진 20대는 대법원에 의해 산재로 인정받았다. 평소 주 5일, 주당 40시간 정도 근무를 했지만 사망 직전 주 6일간 일하며 20시간 초과근무했다. 특히 숨지기 전 1주일간 업무량이 평소보다 50%나 증가한 점 등을 고려해 산재를 인정한 항소심 판단을 대법원도 받아들였다.
이처럼 대법원도 과로에 대해 휴식시간이나 스트레스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를 인정받으려면 일상적인 업무강도와 스트레스를 넘는 수준에 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참고로 한다면 근로자·공무원이 업무과중으로 인한 재해에 대한 보상청구를 위해선 일상적 수준을 넘는 업무 강도가 지속적으로 계속됐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유사한 근무강도라 해도 휴식 등 업무환경이나 업무성격 그리고 기존 질환 유무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판단은 쉽지 않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 사건 등에 있어 업무과중을 인정하기 위한 법원의 업무시간 초과기준이나 휴식기준 등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 기준없이 '종합적 고려'를 하는 법원 판결이 국민 시각에선 '들쭉날쭉'한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행정법원 판결에 대해선 부장판사와 주방장의 업무를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라는 이중잣대로 판단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주방장에 대해선 '단순업무 반복', 부장판사에 대해선 '집중력 필요'와 '심리적 압박감'이라는 표현을 판결문에 적시해 직업에 대한 선입견적 판단이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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