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법상의 절도죄는 "다른 사람의 점유" 아래 있는 "다른 사람 소유"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간 때에 성립하는 죄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점유 아래 있지만 자신의 소유라거나 다른 사람의 소유이지만 자기 점유 아래 있는 물건을 가져간 때에는 다른 죄에 해당됨은 별론으로 하고, 절도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지하철에 승객들이 두고 내린 짐을 가져간 경우를 두고 논란이 된 대법원 판례(99도3963)가 있다. 가져간 사람 자신의 짐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사람 소유' 물건을 가져간 것은 맞지만, 주인을 잃고 지하철에 이곳저곳 이동 중인 짐이 주인이나 지하철 승무원 등 누군가 '다른 사람의 점유'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위 판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전동차 바닥이나 선반에 사람들이 두고 내린 핸드폰이나 소형가방 등을 유실물 센터 등에 맡기거나 신고하지 않고 가져간 A씨에 대해 검찰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것"이라며 A씨를 절도죄 혐의로 기소했던 사건에서 비롯됐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은 다른 사람이 두고 간 물건에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가져간 것"이라며 "누군가가 점유하고 있는 물건을 가져간 것이 아닌데도 '절도'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이 사건에서의 쟁점은 과연 지하철에서 승객들이 두고 간 물건들을 여전히 누군가의 점유 아래에 있다고 보아 그 점유를 침탈한 때에 물을 수 있는 절도죄 책임을 지울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지하철의 승무원은 유실물법상 전동차의 관수자로서 승객이 잊고 내린 유실물을 교부받을 권능을 가질 뿐 전동차 안에 있는 승객의 물건을 점유한다고 할 수 없고, 그 유실물을 현실적으로 발견하지 않는 한 이에 대한 점유를 개시했다고 할 수도 없다"며 "그 사이에 A씨가 그 유실물들을 발견하고 가져간 행위는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함은 별론으로, 절도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즉, 지하철에 승객이 두고 내린 물건은 주인을 잃은 '유실물'이며, 아직 승무원이 발견하기 전에 그 물건을 발견하고 가져간 사람은 누군가의 점유에 있지 않은 물건을 취득해 간 것이기 때문에 절도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재판부가 "점유이탈물횡령죄에 해당함은 별론으로 한다"고 표현한 것은, 검사가 기소한 '절도죄' 부분은 무죄이지만 형법에 규정된 다른 죄명인 점유이탈물횡령죄에는 해당되는 행위였다는 의미다.

결국 위 판례는 검사의 잘못된 기소로 A씨는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 판례 팁 =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범죄 '자체'의 유·무죄를 판단할 뿐, 그 사건이 법원의 판단 결과 검사가 기소한 범죄가 아닌 다른 죄에 해당된다고 할지라도 그 죄의 유죄라고는 선고할 수가 없다. 그만큼 검찰이 범죄 피의자를 기소할 때 어떤 범죄로 기소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위 판례는 검사가 '절도죄'라고 기소했지만, 법원이 '절도'가 아닌 '점유이탈물횡령'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던 사례였다.

형법상 절도죄는 제329조, 점유이탈물횡령죄는 제360조로 각각 별도의 범죄이기 때문이다.

◇ 관련 조항

- 형법

제329조(절도)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360조(점유이탈물횡령)

① 유실물, 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

② 매장물을 횡령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