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 확인이 필요한 경우 원칙적으로는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주민등록증이 없는 경우에는 보통 운전면허증을 대신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운전면허증이 신분 확인의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이 본래 증명하려는 사실은 '면허'와 '신분'으로 각각 다르다.

그런데 운전면허증 역시 실생활에서 신분 확인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과 관련해 운전면허증이 법적으로도 '신분증명서'의 기능이 있는지를 판단한 대법원 판례(2000도1985)가 있다.

A씨는 경찰서 파출소에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던 중 그 파출소 소속 경장 B씨로부터 운전면허증의 제시를 요구받았다. A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C씨의 1종 보통운전면허증(서울지방경찰청장 발행)을 마치 자신의 운전면허증인 것처럼 B씨에게 제시했다. 조사 과정에서 A씨와 C씨가 동일인이 아님을 발견한 B씨는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검사는 A씨가 서울지방경찰청장 발행의 공문서인 운전면허증을 자기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것인양 사용한 것을 두고 "공문서를 부정하게 사용한 것"이라며 A씨를 공문서부정행사죄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공문서부정행사죄는 공문서를 '본래의 용도대로' 사용하되, 부정(不正)하게 사용할 때 성립하는 것"이라며 "운전면허증의 본래 용도는 면허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지, 나와 C씨가 같은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운전면허증의 본래 용도에 그 면허증에 적힌 면허가 있는지를 넘어 그 면허증의 주인과 이를 제시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임을 확인시켜주는 기능까지도 포함되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운전면허증은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이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여 자동차의 운전이 허락된 사람임을 증명하는 공문서"라며 "운전면허증에 표시된 사람이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는 '자격증명'과 이를 지니고 있으면서 내보이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동일인증명'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운전면허증의 앞면에는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의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가 기재되고 사진이 첨부되며 뒷면에는 기재사항의 변경내용이 기재될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반드시 갱신교부되도록 하고 있어, 운전면허증은 운전면허를 받은 사람의 동일성 및 신분을 증명하기에 충분하고 그 기재 내용의 진실성도 담보되어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행위에 있어 동일인증명의 측면은 도외시하고, 그 사용목적이 자격증명으로만 한정돼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운전면허증의 본래 용도에는 자격증명과 동시에 동일인 증명도 포함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인감증명법상 인감신고인 본인 확인,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상 선거인 본인 확인, 부동산등기법상 등기의무자 본인 확인 등 여러 법령에 의한 신분 확인절차에서도 운전면허증은 신분증명서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고, 주민등록법 자체도 주민등록증이 원칙적인 신분증명서이지만, 주민등록증을 제시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신원을 증명하는 증표나 기타 방법에 의해 신분을 확인하도록 규정하는 등으로 다른 문서의 신분증명서로서의 기능을 예상하고 있다"며 그 다른 신분증명서에 운전면허증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연령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고, △특히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훨씬 더 이를 앞지르고 있으며, △금융기관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운전면허증에 의한 실명확인이 인정되고 있는 등 현실적으로 운전면허증은 주민등록증과 대등한 신분증명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법리에 따라 법원은 "제3자로부터 신분확인을 위해 신분증명서의 제시를 요구받고 다른 사람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한 행위 역시 그 사용목적에 따른 행사"라며 "공문서부정행사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가 운전면허증의 본래 용도인 신분증명 기능을 함부로 이용한 것이 인정돼 공문서부정행사죄 유죄가 선고됐던 것이다.

◇ 판례 팁 = 공문서(公文書)란 행정기관 내부나 상호간, 또는 대외적으로 공무상 작성 또는 시행되는 문서와 행정기관이 접수한 문서를 의미한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모두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공문서에 해당된다.

공문서에 대응하는 개념인 사문서(私文書)는 이런 공문서 외 사인(私人) 명의로 된 문서를 말한다. 이런 사문서는 보통 사인들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사실증명'기능을 갖는다.

◇ 관련 조항

- 형법

제230조(공문서 등의 부정행사)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문서 또는 도화를 부정행사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주민등록법

제17조의9(주민등록증에 의한 확인)

①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사회단체·기업체등에서 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 17세 이상의 자에 대하여 성명·사진·주민등록번호 또는 주소의 확인을 필요로 하는 때에는 증빙서류를 첨부하지 아니하고 주민등록증에 의하여 이를 확인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민원서류 기타 서류를 접수할 때

2. 특정인에게 자격을 인정하는 증서를 발급할 때

3. 기타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