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준 전 검사장(우)과 김정주 NXC 대표(좌) /사진=뉴스1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시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법원이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습니다. 진경준 전 검사장(49)이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48)에게서 9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인데요. 판결이 나온 직후 법원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진 전 검사장은 2005년 6월 김 대표로부터 4억2500만원 상당의 넥슨 비상장 주식 1만주를 무상으로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진 전 검사장은 이듬해 이를 10억원에 판 돈 일부로 넥슨재팬 주식 8537주를 샀습니다. 지난해에는 이 넥슨재팬 주식을 129억여원에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얻었죠. 이에 더해 진 전 검사장은 김 대표로부터 제네시스 차량 리스비용과 여행 경비 등 총 9억53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이 같은 금품 수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리상 뇌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존재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친한 친구 사이였던 점 등도 고려됐습니다. 섣불리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이제부터 법원 판결에 비판이 나오는 이유, 그리고 판결문을 통해 재판부가 이 같은 판결을 하게 된 근거 등에 대해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앞으로 검사가 친구에게 돈 받으면 처벌 못하나"…"법리 지나치게 좁게 해석"

진 전 검사장은 김 대표에게서 처음으로 주식을 제공받은 2005년 6월 당시 법무부 검찰국 소속이었습니다. 같은해 5월말 서울중앙지검은 넥슨 관련 사건에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바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검찰국이 해당 사건 수사를 지휘·감독할 관계가 전혀 없었다고 보고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후에도 진 전 검사장은 꾸준히 금품을 제공받았지만, 재판부는 해당 기간 진행되거나 결론이 난 김 대표와 넥슨 관련 수사 약 20여건이 모두 진 전 검사장 직무와 관련이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는 법원이 검사의 직무를 매우 좁게 해석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검찰국이 검사 인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진 전 검사장이 마음만 먹었다면 어떻게든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죠. 심지어 김 대표는 재판 과정에서 금품을 제공한 경위에 대해 "언젠가 사건과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 법조계 관계자는 "김 대표가 직접 진 전 검사장이 검사라서 금품을 제공했다고 자인한 만큼 법원 판결을 납득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신이 직접 맡은 사건과 관련성이 없다면 검사가 친한 지인에게서 금품을 받아도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며 "법원이 뇌물죄 법리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와도 맞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합니다. 대법원이 뇌물죄와 관련한 직무 관련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김광준 전 부장검사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대법원은 2014년 1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부장검사에 대해 다른 검찰청 사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오랜 검사생활 동안 쌓아온 인맥과 경력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본 것입니다.

"유죄 의심할만한 사정만으로는 처벌 어려워"…공은 항소심 재판부로

그렇다면 법원이 이 같은 상황에서도 진 전 검사장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법조계에서는 과거 '벤츠 여검사' 사건과 같은 논리라고 설명합니다. 대법원은 지난해 한 여검사가 내연남에게서 받은 벤츠 승용차 등을 '사랑의 증표'였다고 결론내리고 뇌물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인 직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번 재판부도 진 검사장과 김 대표에 대해 "일반적으로 친한 친구사이를 넘어 '지음'(知音)의 관계에 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친한 사이에 주고받은 돈을 뇌물로 보고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거에 의해 살펴보더라도 10여년간 김 대표와 넥슨에 진 전 검사장의 직무와 관련이 있는 현안이 존재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김 대표가 추후 진 전 검사장의 직무와 관련한 현안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미리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면 적어도 그런 개연성이 확인돼야 하지만,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진 전 검사장이 일적으로 도움을 이미 줬다거나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김 대표가 금품을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죠.

재판부는 또 김 대표가 '진 전 검사장이 검사였기 때문에 금품을 주게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데 대해서는 "돌이켜 생각해보니 금품을 제공한 점에 '진 전 검사장이 검사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불과하고, 진술내용도 추상적이고 의례적이어서 직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이 검사가 되기 전, 사업을 하기 전부터 막역한 사이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유죄로 의심할만한 사정만 가지고는 처벌을 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어떠신가요. 아직도 납득이 어려우신가요. 이 사건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대를 사는 국민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데요.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성 등과 관계 없이 공직자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제공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진 전 검사장에게 이 법이 적용됐다면 처벌을 피할 수 없었겠죠. 특히 이번 판결이 현재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진행 중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뇌물 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민 법 감정과 실제 적용되는 법리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기 마련인데요. 그래도 이번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쉬이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1심 선고 직후 "일부 중요 쟁점에 관해 수사팀과 법원이 서로 견해차를 보였다"며 항소의 뜻을 보였습니다. 이제 공은 항소심 재판부로 넘어갈 텐데요. 항소심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