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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커플 건보 자격 인정…다음은 국민연금? [박다영의 법정블루스]

편집자주법정에는 애환이 있습니다. 삶의 고비, 혹은 시작에 선 이들의 '찐한' 사연을 전해드립니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소성욱 씨가 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동성부부의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2023.02.21.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은 눈물과 미소로 뒤섞였다. 동성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고 이들 부부의 손을 들어주면서다. 1심 재판부가 지난해 1월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긴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지 1년여만, 2021년 소송이 처음 제기된 지 2년만이다.

소송 당사자인 소성욱씨와 김민욱씨는 이날 판결로 그 동안 사회에서 배제됐던 소수자에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씨는 "동성커플이 그동한 누리지 못했던 권리를 되찾고 있다"며 "이번 소송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전례 없는 판결이지만 엄밀히 들여다보면 2심 재판부가 1심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2심은 두 사람이 혼인 관계인 사람들의 공동생활과 비슷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였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사실혼이 성립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판결 이후 일부 언론에서 '동성부부의 법적 지위가 처음으로 인정됐다'는 잘못된 보도가 이어지자 별도의 자료를 내고 '동성결혼'이라는 표현 대신 '동성결합', '동성 배우자' 대신 '동성 결합 상대방'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도 부연했다.

2심 재판부가 이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1심과 다른 결론은 낸 것은 '차별'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과 달리 국민건강보험법에는 배우자의 범위에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이 건강보험공단이 내부 지침으로 사실혼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왔다. 소씨·김씨 커플이 2020년 건보공단 홈페이지에 '다른 이성부부처럼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를 할 수 있냐'고 문의했을 때 건보공단이 자격 인정과 등록을 진행했다가 8개월만에 착오였다며 등록을 취소한 게 이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건강보험법에 규정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건보공단이 재량권을 행사해 판단할 경우 동성커플에 대해서도 차별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건보공단이 이성부부에 대해서는 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실혼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자의적으로 인정하면서 동성커플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얘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험에서도 동성커플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연금법에서는 연금 수급권자가 사망하면 사실혼 배우자가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동성커플은 이런 유족에 해당되지 않는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은 동성커플이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본 첫 사례이기 때문에 다른 제도에도 영향을 줄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현두륜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사회보장제도는 이념이나 목적이 유사하다"며 "국민연금 같은 다른 사회보장 영역에서도 동성커플을 사실혼 관계와 동일하게 봐야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건보제도에서는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2심 판결이 나올 수 있었지만 국민연금 등에서는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민법이 동성결혼과 동성부부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법원도 현행법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동성결혼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 교수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며 "유럽에서는 생활동반자 보호법으로 법적인 혼인 권한을 최대한 인정하고 있고 이런 흐름이 전 세계적인 추세라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항소심 판결에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구할 계획이다. 대법원에선 결과가 다시 뒤집힐 수도 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더라도 동성부부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소수라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는 점, 그런 소수의 권리 역시 보호돼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 과정에서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짚었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며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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