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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동안 우리 서로 만나 굳게 손잡고 뜨겁게 포옹하며 밤새도록 따뜻한 동지, 혈육의 정을 나누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나날들을 잊지 않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12월17일 전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A씨(52)에게 보낸 지령문 중 일부이다. A씨는 20년 넘게 북한과 교류하며 국내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검사 정원두)는 A씨 등 4명이 북한과 수시로 접촉하며 노동운동의 형식을 빌려 간첩 행위를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일 구속기소 했다. A씨와 함께 기소된 인물은 전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B씨(48), 민주노총 산하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C씨(54), 평화쉼터 대표 D씨(51)이다.

검찰과 경찰·국가정보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A씨 등은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노조원들을 포섭했다. 특정 세력으로 민주노총 집행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들은 포섭된 '지하조직'을 중심으로 뒤 반정부 투쟁, 반미·반일 감정 조장, 청년 세대 포섭, 친북 정서 형성 등 활동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북한 정권에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결과 예측, 내부 통신망 계정과 비밀번호 등을 보고했으며 군사정보 등 국가기밀 탐지·수집 활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A씨 등은 북한을 '본사'로, 국내 지하조직을 '지사'로 부르며 활동했다. 민주노총은 '영업1부'라고 칭했다. 이들은 북한이 내린 '대남혁명을 위한 지하조직 구성원 인입의 단계별 절차'를 그대로 따라 활동했다. 해당 절차는 5단계로 구성돼 있다. 사회 부조리를 느낀 사람들에게 다가가 '소극 분자'로 만든 뒤 '동반자→열성분자→적극 분자→임무 수행원'으로 만들라는 내용이다.

이들은 2017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캄보디아·베트남·중국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나 조사 내용을 보고하고 지령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작원 접촉 전 '물병을 열고 마시는 동작' '선글라스를 손수건으로 2~3차례 닦는 동작'을 해 본인의 신원을 확인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100만명 조합원을 보유한 민주노총의 규모를 이용하기 위해 노조 집행부 장악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양한 기관에 있는 조합원을 포섭하면 해당 기관으로 접근하기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A씨 등에게 청와대·검찰·통일부 등 권력기관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인물과 친해지라고 지시했다. 주요 국가기관의 송전선망 마비를 위한 자료, 화성·평택 2함대 사령부, 평택 화력·LNG 저장탱크 배치도 등 비밀 자료를 수집해 보고하라는 지령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등 기관은 지난 1월18일 A씨 주거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북한 지령문 90건, 보고문 24건, 암호 해독키 등을 확보하고 분석했다. A씨 사무실 컴퓨터에서 평택 미군기지, 오산 공군기지 군사시설과 군용 장비 동영상·사진 자료를 확보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번 지령문 건수가 역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 최다라고 밝혔다. 검찰 측은 "A씨 등은 민주노총을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핵심 도구로 이용했다"며 "일부 노동운동가들이 포섭된 노조원이 근무하는 시설에 접근해 군사정보 등 기밀을 수집하고 국가기간망 파괴·마비까지 획책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A씨 등은 진술 거부로 일관했으나 공판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책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하겠다"며 "공범 수사도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