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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몸값은 이 정도' 판 깔아준 '감형의 기술'…뒷북해법 시동

[MT리포트-꼼수 면죄부 된 공탁금]②'돈으로 형량 거래' 잘못된 인식 초래…피해자 의견 청취 법률 명시 추진


법원과 검찰이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피고인이 법원에 합의금을 맡길 수 있는 형사특례 공탁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은 처벌 감경을 노린 '기습·꼼수 공탁'의 부작용이 잇따르면서다. 대검찰청이 최근 이원석 검찰총장 지시로 '꼼수 공탁'에 엄정대응하도록 일선청에 하달한 데 이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8일 오후 3시 제129차 회의에서 형사공탁 관련 양형기준을 논의한다.

특례 공탁제도가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일찌감치 제도 도입 논의 과정에서도 수차례 제기됐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1월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 노력 없이 모든 사건에서 사건번호만 쓰는 식으로 공탁해서 취지가 변질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는 등 2차 피해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온 변제공탁의 문제를 우선 개선해야 한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했다.



'인터넷에 공고' 피해자도 모르는 기습공탁 남발…사법 신뢰 훼손


법조계에서는 현행 공탁법에서 공탁의 시기나 횟수를 제한하지 않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가해자가 공탁을 하면 피해자에게 즉각적으로 공탁사실이 통지되거나 재판부가 피해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도 명시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법 초안에는 법원 공탁관이 직접 피해자에게 공탁을 통지하도록 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인터넷에 공고하는 방식으로 수정됐다.

서울 청담동 음주운전 사망 사건에서처럼 피해자가 공탁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없는 선고 직전에 가해자가 기습 공탁을 하거나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반복해 공탁해 형량을 거듭 줄이는 꼼수가 등장하게 된 이유다. 사실상 '꼼수 공탁'이 성행할 수 있는 판이 깔린 셈이다.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형사공탁이 접수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법원에서 형을 감경하는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돈으로 형량을 거래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소속 손정아(40·변호사시험 1회), 박가희(36·사법연수원 45기), 임동민(31·변시 8회) 검사는 최근 대검 논문집 형사법의 신동향 겨울호에 실린 '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논문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용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제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거나 피고인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몸값이 딱 이 정도라는 메시지와 함께 2차 가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형 선고 이후 피해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여성변호사회가 피해자 국선변호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2.6%가 '피해자들이 감형 및 집행유예에 대한 불안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75.9%는 '피해자들이 법원과 가해자에 대한 분노 감정을 표출했다'고 응답했다.



피해자 목소리 반영해야…"법원 예규 손질" 의견도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근본적으로 기습 공탁을 막으려면 피해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영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형사공탁에서 법원이 피해자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법률에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공탁 신청 기간이나 범죄 유형을 제한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9월 형사공탁의 경우 변론 종결 14일 전까지 가능하도록 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발의됐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형사공탁을 정상참작 사유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도 지난해 8월 발의됐다.

공탁이 양형기준상 감경요소에 포함되지만 재판부가 재량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법은 법원의 의지에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에서 법안 개정에 걸리는 시일을 감안하면 '변론 종결 후 들어온 공탁에 대해서는 추가 변론기일을 열거나 선고기일을 늦추는 등 피해자 의견진술을 보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원이 재판예규에 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는 얘기다. 재판예규는 재판업무처리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 정한 일종의 지침이다.

대법원은 다만 재판에 관한 사항을 예규에 담는 것은 무리라는 이유로 이 같은 의견에 부정적인 분위기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미 '정상자료로 공탁서가 제출된 경우의 유의사항'이란 이름의 재판예규에서는 법관이 공탁을 양형에 참작할 때 '공탁금 회수 제한 신고서'가 첨부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어 공탁 관련 재판 절차에 대한 사항을 예규에 담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반박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습공탁으로 피해자의 의사가 배제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법원이 재판예규를 바꾸는 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라며 "양형에 공탁이 반영됐다는 것은 판사가 공탁사실을 인지했다는 의미인 만큼 공탁에 대해 피해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예규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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