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했다. /사진=머니S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권을 의결하기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최상목 쪽지'를 준 적도 없다고 하는 등 국회 측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윤 대통령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계엄 선포 49일 만이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심판에 출석한 것은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에게 계엄선포 후 계엄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있나'라고 묻자 "없다"고 답했다.

또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 쪽지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느냐'는 문 권한대행의 질문에도 "쪽지를 준 적도 없고 나중에 계엄을 해제한 후 한참 있다가 언론에 이 같은 메모가 나왔다는 것을 기사에서 봤다"며 "기사 내용이 부정확한 데다가 이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그때 구속이 돼있어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했다"고 밝혔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를 비롯해 김 전 장관 등 군장성들이 국회와 수사기관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 발표 후 접은 종이를 줬다", "대통령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진술을 모두 부인한 것이다. 특히 '최상목 쪽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예비비를 확보하고 국회에 각종 자금을 끊어라",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마련하라"는 내용으로 비상계엄의 국헌문란 목적성을 가를 핵심 증거로 꼽히는 만큼 향후 탄핵심판에서 증인신문 등을 통해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설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의 배경으로 '부정선거 의혹'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정선거 의혹을 음모론으로 사후에 만든 논리라고 (국회 측이) 주장하지만 계엄 선포 전부터 여러 가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확인 차원이었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 대통령 대리인단 도태우 변호사는 재판에서 프레젠테이션(PPT)으로 제출한 증거를 설명하면서 2020년 4월 총선 재검표 현장에서 새 투표용지처럼 보이는 이른바 '빳빳한 투표지'가 다수 발견된 것이 부정선거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와 관련, 재판이 끝난 뒤 부정선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재차 반박했다. 선관위는 설명자료에서 "지난 총선 전에 취약점 대부분을 개선했고 이를 국정원이 2차례에 걸쳐 확인했다"며 "'빳빳한 투표지' 등 투표지 위조 의혹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이 이미 입증됐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은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오후 2시부터 1시간43분 동안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4차례에 걸쳐 직접 의견을 밝혔다. 헌재에서 발언 기회를 얻은 윤 대통령의 첫 마디는 "여러 헌법 소송으로 업무 과중한데 저의 탄핵 사건으로 고생하게 돼서 재판관에게 송구한 마음이다"였다.

윤 대통령은 "저는 철들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특히 공직생활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헌재도 이런 헌법 수호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인 만큼 재판관님들께서 여러모로 잘 살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2시58분쯤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해 오후 1시58분쯤에 헌재 심판정에 들어왔다. 포승줄이나 수갑 없이 자유로운 상태로 등장한 윤 대통령은 남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맨 채로 자리에 앉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변론이 끝난 3시43분까지 심판정에 앉아있다가 국군서울지구병원을 들러 3시간 반가량 진료를 받은 뒤 밤 9시10분쯤 서울구치소로 복귀했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한 달 전부터 주치의가 받으라고 한 치료인데 계속 연기하다가 오늘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날 오후부터 구치소에서 대기하면서 전날에 이어 강제구인을 시도하려 했지만 윤 대통령이 밤 9시 이후 복귀하면서 불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