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다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족처럼 믿었던 직원에게 배신을 당했다며 법의 도움을 청하는 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회사의 기밀을 외부로 빼돌리거나 회사 자금을 횡령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우다.

실제로 올해 초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50대 남성이 자금담당자와 함께 필자를 찾아왔다. 회사에서 납품하고 받아야 할 6억여원 중 3억여원을 당시 자금관리를 담당하던 직원이 자신의 통장으로 받아 가로챘다는 것이다. 더 조사해 본 결과, 이번 건을 제외하고도 9700만원에 이르는 회사자금을 같은 방법으로 횡령해 총 4억 원에 가까운 금전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했다.

해당 직원은 횡령한 회사 돈을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올린 다음, 원금을 다시 회사에 돌려놓으려 했지만, 주식투자에서 실패해 계속해서 횡령행위를 하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비리행위를 같은 팀의 팀장이 눈치를 채고도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돈도 돈이지만 가족처럼 믿고 의지했던 두 직원에게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배신감에 살고 싶은 의욕도 없다"며 하소연했다.

횡령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행위자에게 타인의 재물을 맡아 두는 보관자로서의 신분이 인정돼야만 한다. 이번 사례처럼 업무상 임무를 맡는 자라는 신분이 추가되면 형법 제356조에 따라 업무상횡령죄가 성립된다. 즉, 자금 수령 내지 관리 업무를 맡아 수행하는 자가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사용하거나, 회사가 받아야 될 돈을 중간에서 개인이 받는 행위를 저질렀을 때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

단순 횡령죄를 범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지만, 업무상횡령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단순 횡령죄보다 가중된 처벌을 받는 셈이다. 업무에 의하여 타인의 재물을 맡았다는 것은 더 큰 신뢰관계에 근거해 임무가 맡겨졌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가해자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업무상횡령죄가 성립되기 위한 구성요건에 있어 보관자로서의 신분과 함께 주로 문제되는 것이 '불법영득의사'다. 불법영득의사란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재물을 자기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하거나 처분하는 의사를 말한다.

하지만 임시로 처분하고 사후에 반환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거나 사후에 실제 반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불법영득의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이번 사례에서 횡령 행위를 한 자금담당자가 잠시 회사 자금을 사용한 후, 다시 회사에 반환하려 했다고 해도 이미 회사의 자금을 빼간 행위가 있었던 만큼 불법영득의사는 인정되며, 실제 반환이 이뤄진 경우에도 횡령죄를 피할 수는 없다. 다만, 반환한 사정은 양형에 있어 참작할 사유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가해자의 비리행위를 알고도 침묵해 회사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팀장에게도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부작위에 따른 방조범으로서의 책임이 성립될 수 있다. 부작위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작위의무)가 있는 위치의 사람이 사건의 진행을 변경시킬 수 있는데도 방치해 사건의 진행을 변경시키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팀장은 그 직위상 부하직원의 횡령행위를 막고, 이를 인지한 경우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할 작위의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비록 적극적으로 횡령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고,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해도 방조범으로서의 형사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