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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은행법학회, 입법조사처 공동주최로 '은행의 기업구조조정에서의 역할과 법적과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벌였다. /사진=황국상기자 |
지난해 말 일몰폐지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이 2개월여 공백기간을 지나 이달 중순 새로 공표됐다. 당국은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을 마련해 내달 중 후속 입법절차를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기촉법은 워크아웃(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제도의 근거법으로 2001년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이달 공표된 신(新) 기촉법에 대해 '지연입법'이라는 등 평가가 있지만 과거에도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1년10개월 가량 기촉법이 실효된 경우가 있었다. 상황에 따라 일몰이 연장되거나 새로운 법 형태로 연장되곤 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목표로 만들어진 법인 만큼 기촉법은 다수 채권자의 이해를 모두 반영하지 못한다는 등 이유로 위헌소지가 일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이 아닌 민간차원에서의 위험의 조기진단을 통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채권단협의회 결의로 신속한 신규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등 장점이 단점에 비해 더 컸다는 평가다.
이번에 5번째에 이르는 새로운 기촉법은 위헌소지를 막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제기된다. 이해관계 상충을 막기 위한 제도가 자칫 '신속성' '효율성'을 목표로 한 워크아웃 제도의 장점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은행법학회와 국회입법조사처 공동주최로 열린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은행의 역할과 법적과제' 세미나에서 논의된 주요 쟁점을 정리해봤다.
◇채권자 범위의 확대.. "워크아웃 효율성 잠식 우려"
새 기촉법이 기존 기촉법의 일몰연장이라는 일각의 평가도 있지만 새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장치들이 새로 도입됐다. 이 때문에 새로운 법의 제정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대표적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이해관계자자 적용범위의 확대다.
지난해 말 일몰폐지된 기촉법에 따르면 채권자는 비금융 사업자나 외국금융기관, 상거래 채권자를 제외한 채권금융기관에 한정됐지만 새 기촉법은 공모채, 비협약채권 보유자 등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채권자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대됐다. 보다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기업 구조조정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만든 창구다.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범위도 종전에는 신용공여액이 500억원 이상인 기업에 한정됐으나 이 기준도 새 기촉법에서는 삭제됐다. 대기업 뿐 아니라 중소기업까지도 기촉법에 따른 구조조정(워크아웃)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이해관계자, 특히 채권자 범위의 확대가 신속·효율성을 목표로 한 워크아웃 제도의 장점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관리절차 개시는 물론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혼선이 야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옛 동양그룹의 경우는 극단적일 수 있지만 4만명에 달하는 CP(기업어음) 개인투자자들까지도 새 기촉법에서는 채권단에 속할 수 있게 된다.
실무상으로 소액채권자의 협의체를 별도로 구성하게 해 이들을 금융채권자협의회(옛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 참석케 하는 등 방법이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종전에 비해 의사수렴과정이 번잡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금융채권자협의회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족수는 총 금융채권액 기준 75%다. 단일 채권자의 채권 보유액이 75%에 모자랄 경우 다양한 채권자들의 동의를 어떻게 이끌어낼 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단일 채권자의 채권보유액이 총 채권액의 75%를 웃돌 경우에도 새 기촉법은 별도로 총 채권자 수의 40%에 이르는 동의를 받아야 주요사항을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채권단이 시간·공간과 같은 물리적 이유로나 채권규모에 따른 이해관계 등으로 분산돼 있을 경우 워크아웃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신규자금 집행시 채권규모별로 분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개인비중이 높은 소액채권자가 과연 얼마나 신규출자에 참여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평가다.
이종철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2실장은 "새 기촉법에서는 신규자금 분담 대상채권의 범위에 개인이 보유한 공모채 등도 포함되도록 돼 있다"며 "이들이 신규자금 분담요청을 받았을 때 (신규공여 미이행시 손실분담 이행을 포함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할지에 대해 실행과정에서 논란이 다수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사채권자들이 별도의 대표자를 선정하도록 해 해당 대표자가 금융채권자협의회에 참석토록 하는 방안이나 소액·개인채권자에 부과하는 의무를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방안, 혹은 공모채·비협약채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경우 이들을 배제하는 방안 등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채권자 보호강화도 워크아웃 효율성 잠식할수도
다수 의결에 반대하는 소액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반대매수청구권의 강화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금융채권자협의회 결정에 승복하지 못하는 소액채권자들이 본인이 보유한 채권을 해당의안 찬성 채권자들이 의무적으로 6개월내 연대해서 매수토록 하는 조항이 새 기촉법에 포함돼 있다. 반대매수청구권 행사시 해당 채권매수가액의 하한을 청산가치로 명문화한 점도 특정이다.
반대매수청구권 행사근거도 대폭 확대됐다. 종전에는 공동관리절차 개시여부나 채권재조정, 신규신용공여 결정 등의 제한된 사항에 대해서만 반대매수청구가 가능했으나 새 기촉법은 종전 법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도 기업개선계획의 수립이나 변경, 공동관리절차 연장을 비롯해 협의회 의결로 정하는 사항 제반에 대해 반대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대매수청구권을 보장하는 근거로는 본인이 동의하지 못한 집단적 결정에 의해 재산권 행사가 제한을 받거나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이같은 문제의 소지를 없애려는 이번 새 기촉법의 조항이 워크아웃의 신속·효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재필 금융감독원 부국장은 "경제상황이 악화될수록 채권은행 등 금융채권자들은 기업여신을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신규 신용공여 제공도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반대채권자의 해당채권까지 인수한다는 것은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부국장은 "법 적용을 받는 채권자 범위가 기존 채권금융기관에서 연기금·공제회 등 금융채권자로 확대된 새 기촉법에서는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금융채권자가 늘어날 것"이라며 "기존 채권단에 속한 은행 등도 연이어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등 이유로 정상적으로 회생가능한 기업도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에 맡긴 칼자루, 제대로 휘두를지도 의문"
아울러 새 기촉법은 금융채권자들이 워크아웃 개시를 위한 협의회를 소집할 때 종전 금감원장이 행사했던 채권행사 유예청구를 주채권 은행이 행사하도록 명문화했다. 금융당국의 개입을 최소화해 관치(官治)논란을 없애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민간기관인 주채권은행이 채권행사 유예청구권한을 보유한다는 것이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 등에 대해 갑(甲)이 아닌 을(乙) 또는 병(丙)의 지위에 있는 채권금융기관이 조기에 부실채권을 정리하려고 할 유인이 적기 때문에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되레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안수현 교수는 "이번 5차 기촉법은 채권자들의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시도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장치를 도입, 위헌시비를 많이 해소하려고 한 점이 눈에 띈다"면서도 "기업 뿐 아니라 금융기관에서도 해당부실을 외부로 알리고 조정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도 이미 공여한 자금이 변제되지 못할 위험을 인지할수록 추가로 충당금을 적립해야 하는 등 부담이 있는 게 현실"이라며 "돈을 빌려준 이들에게도 부실징후를 파악해야 할 유인이 떨어지는 현 시스템에 대한 개선방안이 미리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주채권은행의 역할범위와 권한에 대한 표준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금융기관의 부실관리 노력을 인센티브와 연동시키는 등의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 기촉법도 한시법이라는 한계, 상시법제 마련돼야"
이와 함께 새 기촉법 역시 2018년 6월말까지 한시법으로 마련된 점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들도 잇따랐다. 기업의 법정관리 절차를 규율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일명 통합도산법)처럼 민간차원의 주요 구조조정 수단인 워크아웃 제도의 상시화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산업은행의 이종철 실장은 "과거의 구조조정은 일시적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유동성위기를 이유로 발생했다"며 "이 때만 해도 구조조정을 통해 신속한 턴어라운드(실적개선)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과거와 달리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경쟁력이 훼손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훨씬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는 지적이다.
이 실장은 "과거처럼 채무의 만기연장이나 출자전환 등 채무구조조정만으로 기업의 정상화를 도모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복잡다단한 경제환경에서 통합도산법에 따른 법정관리만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많기 때문에 기촉법의 워크아웃 제도의 상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워크아웃이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구조조정 수단에 따라 정상화 가능성, 구조조정 비용, 이해관계자간 형평성 등에 큰 차이가 있다"며 "대상기업이 처한 상황과 정상화추진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최적의 구조조정 수단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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